17일 오전 눈과 얼음이 없는 나라 청소년들에게 동계스포츠를 알리는 '드림 프로그램'이 열린 강원 평창군 알펜시아 스키장.
시리아 출신인 압둘아 자크(15)군이 초보자용 슬로프를 조심스레 내려오고 있었다. 내전 중인 시리아 난민인 자크는 국제사회의 공적개발원조(ODA) 프로그램을 통해 이번 드림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눈밭을 구르고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어도 중동에서 온 열다섯 청소년의 입가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헬멧을 쓰고 걸 그룹 '크레용 팝'의 댄스를 추는 해맑은 모습이 우리나라 청소년과 별반 다르지 않다. 자크는 "눈 위에서 즐기는 스키는 바퀴가 달린 인라인스케이트와는 또 다른 재미가 있다"며 "즐길 거리와 먹을거리가 많은 한국이 너무 좋다"고 환하게 웃었다. 자원봉사자로 이번 프로그램의 통역을 맡은 백두진(27ㆍ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씨는 "자크는 이곳을 찾은 모든 이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릴 만큼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라며 "말이 통하지 않아도 아프리카와 중남미에서 온 또래 친구들과도 벌써 친구가 됐다"다고 말했다.
그저 천진난만해 보이기만 하는 자크이지만 그에게는 어린 나이에 생사를 넘나든 아픈 기억이 있다. 그와 가족들은 2011년 3월 시리아 내전이 격화되자 화염을 뚫고 시리아와 국경을 맞댄 요르단 난민촌으로 빠져나왔다. "칠흑 같은 어둠 속 곳곳에서 총소리와 대포 소리가 들렸어요. 사람들이 부상의 고통에 괴로워하는 신음 소리도 나고…." 당시 내전의 참상을 전하는 이 어린 소년의 표정에는 악몽과 같은 기억들이 되살아나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아버지는 당시 반군단체 활동을 위해 수도 다마스쿠스에 남았고, 어머니와 우리 7명의 형제는 요르단과 사우디아라비아, 터키 등지로 뿔뿔이 흩어졌다" 며 한숨을 내쉬었다. "내전은 단란했던 우리 가족의 행복을 송두리째 뺏어갔다"며 결국 눈물을 보였다.
우여곡절 끝에 난민촌으로 빠져나온 자크는 터키 이스탄불의 압둘라빈압바스 중학교에 진학했다. 그러나 지난해 여름 조국 시리아에 화학무기가 살포돼 수천 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그는 현지 친척들과 친구들의 생사가 걱정돼 며칠간 잠도 이루지 못한 채 괴로워했다. 자크는 "뉴스를 보니 잠든 듯 평안해 보이는 어린아이가 실제로는 화학무기 공격으로 인해 숨져 있는 모습이라 경악을 금치 못했다"며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열다섯 이 청소년의 간절한 소망은 하루빨리 조국에 평화가 찾아오는 것이다. 그리고 내전이 끝난 조국의 알파인 스키 국가대표 선수가 되는 것이 자크의 바람이다. 그는 "4년 뒤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 가슴에 시리아 국기를 달고 슬로프를 누비고, 그 다음 대회에서는 메달에도 도전하고 싶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전 세계가 고통받는 시리아 어린이들에게 관심을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다마스쿠스의 아이들도 이곳 어린이들처럼 행복하게 뛰어놀 수 있는 날이 오도록 말이죠."
평창=박은성기자 esp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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