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통가의 루지 선수 브루노 바나니(25)가 조국에 사상 첫 동계올림픽 참가라는 선물을 안겼다.
바나니는 지난달 미국 유타주에서 열린 월드컵대회 남자 싱글 종목에서 46초868의 기록으로 출전 선수 42명 중 28위에 올라 자력으로 올림픽 출전 티켓을 딸 수 있는 38위 안에 들며 소치 동계올림픽 출전을 확정했다. 연평균 기온이 섭씨 25도 안팎인 열대기후인 통가에서 '통가판 쿨러닝'을 완성한 것이다.
원래 통가의 대표 스포츠인 럭비선수였던 바나니는 2008년 독일 루지 챔피언을 지낸 이사벨 바르친스키가 통가에서 주최한 루지 선수 선발대회를 통해 썰매와 처음 인연을 맺게 됐다. 통가 국민 10만여명 중 그를 포함해 2명이 뽑혔던 것. 2009년 2월부터 그는 올림픽에서 3연패를 달성한 게오르그 하클 등 독일 선수들에게서 기술을 익히고, 여름엔 노르웨이 라트비아 등의 경기장에서 구슬땀을 흘렸다. 덕분에 시속 140㎞를 넘나드는 속도에 적응하며 충돌하지 않고 코스를 완주할 정도의 수준이 됐다. 하지만, 그는 목표로 했던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출전에 아쉽게 실패했다. 이후 꾸준히 실력을 쌓아 2011년 아메리카컵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는 등 두각을 나타내더니 마침내 올림피언의 꿈을 이뤘다. 독일 홍보ㆍ마케팅 업체인 '마카이'의 유럽지사장이자 바나니의 매니저인 마티아스 아일은 "2013~14 시즌 성적이 좋았다"며 "소치까지 머나먼 길이었으나 마침내 해냈다"고 감격해 했다.
하지만 브루노 바나니는 마케팅 논란으로 큰 오점을 남겼다. 그가 마케팅 전략 차원에서 '푸아헤아 세미(Fuahea Semi)'란 본명을 버리고, 독일의 속옷 제조업체인 '브루노 바나니(Bruno Banani)'와 똑 같은 이름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2012년 2월 처음 보도한 독일 시사주간지 에 따르면 통가에서 선수를 최종 선발할 때 독일 홍보ㆍ마케팅 업체인 '마카이'가 개입해 이름을 바꾸도록 했다. 그가 올림픽에 출전하게 될 경우 이름을 전 세계에 노출시켜 홍보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전략이었다. 마카이는 현재 속옷제조사 브루노 바나니의 소셜미디어 홍보를 담당하고 있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당시 "자기 이름을 스폰서의 이름으로 바꾼 건, 과도하고 삐뚤어진 마케팅 아이디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그는 "여권에 바꾼 이름이 찍혀 있다면, 그 이름으로 올림픽 경기에 출전해도 막을 방법은 없다"며 올림픽 규정에 저촉되지 않는 점을 분명히 했다.
통가는 "그를 사상 처음으로 동계올림픽에 출전시키려고 모금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지난해 국가 부도위기(디폴트)를 겪을 뻔 했던 통가 정부는 바나니가 소치올림픽에 참가하도록 왕실이 운영하는 통가루지협회에 5만 통가달러(약 2,900만원)를 지원할 예정이다.
통가는 1984년 미국 LA올림픽부터 하계 올림픽에 참가해 역대 올림피언 31명 중 1996년 미국 애틀랜타올릭픽 당시 권투 슈퍼헤비급 결승전에 진출한 파에아 울프그람 선수가 딴 은메달이 유일한 올림픽 메달이다. 우여곡절 끝에 올림픽에 출전하는 브루노 바나니가 객관적인 실력 차를 딛고, 조국에 첫 동계올림픽 메달을 안길 수 있을 지 관심이 모아진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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