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일본군에 의해 저질러진 푸순(撫順) 핑딩산(平頂山)) 대학살 당시 한국인도 희생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17일 중국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시에서 북동쪽으로 2시간 가까이 차로 달려 도착한 푸순(撫順)시의 핑딩산(平頂山) 학살 기념관. 일본이 1932년 9월 16일 항일 유격대를 지원했다는 이유로 이곳 주민 3,000여명을 모아놓고 기관총으로 쏴 숨지게 한 비극을 간직한 곳이다. 기념관은 당시 희생된 800여구의 유골 발굴 현장을 대형 유리로 감싼 뒤 세워져 있었다. 30여m 가량 길게 이어진 현장의 뒤엉킨 유골은 82년의 세월에도 그대로 남아 당시의 참상을 보여줬다. 어머니가 갓난아이를 감싸 안은 모습과 절규하듯 입을 크게 벌린 유골, 해골 한 가운데를 관통한 총탄 구멍과 몸도 가누기 힘들었을 장애인의 유골 등은 보는 이의 가슴을 찢었다. 1㎡ 공간 안에 무려 8구의 유골이 함께 쌓여 있는 곳과 어린이 유골만 몰려 있는 곳도 있었다. 곳곳에는 기름통과 나무 장작들의 흔적이 보였다. 일본군이 기관총을 난사한 것으로도 모자라 시체 더미 위에 기름을 뿌리고 불을 질렀다는 증거이다.
샤오징취안(肖景全) 전 푸순핑딩산학살기념관장은 "1932년9월15일 랴오닝민중자위대의 공격을 받은 일본군이 그 이튿날 곧바로 이 일대 주민들을 보복 차원에서 학살한 것이 핑딩산 대학살의 진실"이라며 "3,000여명의 희생자 중에는 한국인이 있었다는 증언도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당시 푸순에는 일본군에 의해 끌려 와 푸순탄광에서 일하던 많은 한국인이 있었다"며 "푸순탄광에서 노역 중 숨진 1만여명의 희생자 중에도 구체적 수치는 알 수 없지만, 분명히 한국인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일본은 1931년 노천탄광이나 다름없고 지정학적으로도 중요한 이곳을 점령해 침략 전쟁의 주요 자원 공급 기지로 삼았다. 푸순탄광은 연간 채굴량이 1만톤에 달할 정도로 컸으나, 노역은 모두 한국인과 중국인의 몫이었다는 것이 샤오 전 관장의 설명이다.
이에 앞서 16일 찾은 랴오닝성 선양시 9ㆍ18 역사박물관도 일제의 침략상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벽 면에 새겨진 '9ㆍ18을 잊지말아라(勿忘九一八)'란 1991년 당시 장쩌민(江澤民) 총서기의 휘호가 맨 처음 눈에 들어왔다. 9ㆍ18이란 1931년 9월18일 일본 관동군이 당시 펑톈(奉天ㆍ지금의 선양) 북쪽 류탸오후(柳條湖) 부근에서 자신들이 관할하던 철도를 폭파한 뒤 중국인의 소행으로 몰아 이 일대를 점령한 만주사변을 일컫는 숫자다. 박물관 앞엔 이날을 가리키는 탁상용 달력을 형상화한 대형 조각물도 세워져 있었다. 박물관 안은 일본군국주의가 1894년 청일전쟁으로 한반도와 중국 대륙에 대한 야욕을 드러낸 뒤 1927년 '동방회의'를 열고 '대륙정책'을 확정한 과정, 만주사변 이후 1932년3월 만주국을 세운 일 등 침략의 역사가 당시의 사진과 유물로 증명돼 있었다. 징샤오광(井曉光) 9ㆍ18 역사박물관장은 "매년 100여만명이 찾아 일본 군국주의의 잔혹성을 확인하고 간다"며 "최근 일본의 우경화가 노골화하면서 방문객이 더 늘었다"고 말했다.
선양 제2차 연합군 전쟁포로 수용소 유적 전시관은 일본군의 범죄가 한국과 중국뿐 아니라 미군과 영국군에게도 가해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곳이다. 당시 연합군 포로 2,000여명은 이 곳에서 일본의 세균전 부대인 관동군 731부대와 100부대에 의해 생체 실험 대상이 됐고 이중 최소 300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왕젠쉐(王建學) 중국근현대사 사료학학회 부회장은 "중국인뿐 아니라 평화를 사랑하는 전 세계인이라면 기억해야 하는 역사가 바로 일본 군국주의 침략사"라며 "2차 대전 당시 서방의 침략자였던 독일은 이미 잘못을 뉘우치고 사과했지만 동방의 침략자였던 일본은 역사적 사실마저 부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행사는 중국 외교부가 랴오닝성 정부와 함께 외국 기자들을 초청, 1박2일 일정으로 진행됐다. 지난달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 이후 인해전술식의 국제 여론전을 펴고 있는 중국이 일제의 만행을 폭로하기 위해 마련됐다. 그러나 저우쉐량(周學良) 푸순시박물관장은 "과거의 역사를 강조하는 것은 묵은 원한을 키우려는 것이 아니라 이를 교훈으로 삼아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으면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선양ㆍ푸순= 글ㆍ사진 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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