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공사 중이다. 재학(요즘은 4년이 아닌 평균 5년 이상) 중 한 번도 대규모 공사가 없이 대학을 졸업하는 일은 로또에 당첨될 확률만큼 낮다. '대학을 기업처럼 경영해야 한다'는 이상한 인식이 널리 퍼진 대한민국에서 대학은 정신의 가치를 놓치고 있다. 대학이 현실과 동떨어진 서생들의 집단일 수는 없다. 특히 사립대학은 재단의 출연과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운영하는 까닭에 낭비를 극소화하고 합리적인 운영으로 내실을 기해야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대학 총장들은 임기 내에 건물 하나쯤은 지어야 하는 것처럼 착각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작 그 돈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꼼꼼하게 따지지도 않는 것 같다. 거대한 건물, 첨단 시설, 화려한 집기 등이 대학의 경쟁력이나 실력이라고 착각하는 것만 같다. 그러나 대학의 본질은 진리의 탐구와 같은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고 수련하는 곳이다. 겉으로는'그런 본분에 충실하지 않은 대학이 어디 있으랴' 하지만 속내를 파보면 겉모습과 잇속에만 치중하는 걸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예전에는 대학의 청소미화를 담당하는 이들도 학교에서 직접 채용하는 직원이었다. 물론 사무직이나 영선작업 등을 지원하는 기술직과 달리 어느 정도의 차별은 있었다. 그러다가 외환위기 이후 각 기업이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아웃소싱에 열을 올리면서 대학들도 자연스럽게 청소미화와 경비 등의 일을 외부 용역에 맡겼다. 임금과 노동조합 등의 문제로 곤혹스러울 대학들은 경영합리화를 내세웠다. 대학도 경영과 재정의 문제가 없지 않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불가피성은 있다손 치더라도 과연 그 문제와 선택에 대한 고민이 있었을까? 어쩌면 교직원들의 자기 이익에 대한 차별 의식이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드러내놓고 비판하거나 성찰한 경우를 별로 보지 못했다. 그러면서 진리의 상아탑 운운한다.
여러 대학에서 벌어진 이들에 대한 비인격 대우와 임금의 문제는 한두 해의 일이 아니다. 그때마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지만, 근원적 대책이나 처방은 거의 없다. 대학마다 자기네는 법적으로 고용주체가 아니기 때문에 자기 일이 아니라고 발뺌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일은 거의 해마다 반복된다. 대학은 정신의 가치, 진리와 정의, 그리고 자유를 추구하는 집단이지 이익을 추구하고 물질적 성취를 추구하는 집단이 아니다. 재단의 출연금은 실질적으로 제로에 가까우면서 이런저런 핑계로 적립금은 경쟁적으로 쌓아 놓지만, 거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인격성과 불의는 외면한다. 그것은 공공연한 '불편한 진실'이다. 그런 탐욕과 불의를 막기 위해 법적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했더니 똘똘 뭉쳐 보수의 가치를 내세우며 저지했던 이들이 과연 누구였는가 되돌아봐야 한다.
종교와 교육 기관은 물질을 추구하는 곳이 아니라 정신의 가치를 추구하고 수련하는 곳이다. 그런데 그런 기관들이 운영하는 병원이나 학교에서 버젓이 착취와 비인격적 처우가 난무하지만 아무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럴 거라면 차라리 접는 것이 옳다. 물론 현실적인 문제들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대학은 정신과 인간의 가치를 실현하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다른 이들과 사회에 대해 대학이 노력하면, 인간에 대해 성찰하면 가능한 일이라는 걸 보여야만 한다. 그게 대학의 첫 번째 사명이고 임무이다. 근사한 건물과 시설에 투자할 게 아니라 정신의 가치에 투자하고, 학생들에게 그 혜택을 주어야 한다. 낡은 건물에서 공부한다고 생각마저 낡아지거나 시대에 뒤떨어진 교육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그 멋진 건물에서 공부하기 위한 등록금을 위해 정작 공부할 시간에 아르바이트하느라 정작 공부할 시간조차 없는 학생들이 부담 없이 공부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그게 대학의 본분이다. 그리고 겉모습에 휘둘리지 않는 삶을 연마하는 것이 학교의 사명이다. 허투루 새는 돈은 막고 그 돈으로 환경미화와 경비 일 하는 이들을 정식으로 고용하는 모범을 보여주는 치열함이 학교의 몫이다. 그게 진짜 정신의 가치이고 진리와 정의 실현의 첫 걸음이다. 공사판 제발 좀 이제 치우자.
김경집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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