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광부·대장장이… 노동과 일상에서 혁신 찾아낸 이름 없는 창조자들 가치 담아선사시대 식물 수렵으로 '채집 과학' 펼친 여성 업적도
초등학교 때부터 배워온 과학의 역사는 손으로 꼽을 수 있는 몇몇 천재와 위인들의 영웅담으로 가득하다.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망원경을 이용해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님을 밝혀낸 과정, 아이작 뉴턴이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중력의 법칙을 알아낸 업적,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간단한 방정식으로 시공의 비밀을 풀어낸 천재성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과학의 창조물에 대한 공을 학자 개인에게 돌리는 범인류적인 관행은 이처럼 교과서만 뒤적여도 금세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역사와 영토의 지배자들이 독점했던 과학사에 너무나 오래 길들여 있었다.
이처럼 '위로부터' 쓰여진 과학사의 서술방식은 과학자들을 나머지 인류 위로 우뚝 솟은 영웅, 심지어 보통 사람은 범접하기 어려운 신화적 인물로 만들어버렸다. 과학 혁명과 같은 위업은 특별한 사람들의 성지와 같은 수준으로 격상됐으며 인류의 삶을 뒤바꾼 발명과 발견이 오로지 상위계층의 특정 교육을 받은 이들에 의해 이뤄졌다는 잘못된 생각이 자리 잡게 했다. 이공계 출신의 역사학자라는 특이한 이력의 저자는 과학이 다름 아닌 민중의 힘에 의해 발전했으며 익히 위인으로 알고 있는 과학자들은 이들의 어깨 위에 앉아 먼 곳을 조망할 수 있는 특권을 가졌을 뿐이라는 이른바 '아래로부터 다시 쓰는' 과학사를 내놨다.
저자는 손노동에 대한 지식인들의 경멸감에서 비롯된 과학과 기술의 경계 나눔이 기존의 과학사에서 민중의 자취를 지워낸 주요 원인이라 말한다. 책은 "과학의 시작은 말이 아니라 행위였다"는 괴테의 말을 화두로 선사시대부터 20세기 말까지 엘리트 중심 기존 과학사의 뒷방에 머물러있던 민중의 힘을 소환해낸다.
여성은 지배층과 피지배계층이 명확히 생성되지 않은 선사시대의 유일한 '민중'이었다. 과학사는 이 시대 여성의 업적을 묵과해왔다. 수렵인 남성과 대비되는 관념인 채식인 여성은 당시 식물과 작은 동물의 1차적인 채집자였고 이들이 세대를 거듭해 체득한 자연지식은 이후 수많은 과학자들의 결실을 가능케 한 씨앗이라고 책은 강조한다. 인류학자 루이스 리벤버그도 이 같은 생각을 확장해 "채식인들의 정교한 추적능력이야말로 과학의 기원에 해당한다"고 그의 저작 에 명시했다.
채식인 못지않게 인상적인 것이 있으니, 수천 년 전부터 태평양의 섬들을 누볐던 선사인들의 바다와 별들에 대한 풍부한 지식이다. 전 세계 학생들은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태평양을 발견하고 탐험한 위인이라 배우지만 그보다 한참 전 뉴기니인들이 완성한 항해술이 없었다면 마젤란 역시 범인에 그쳤을 것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중세 항해학의 최선두에 섰다고 역사가 그려낸 포르투갈 항해왕 엔리케가 자신의 부와 왕실의 힘을 모두 동원해 징발하고 소유하려 했던 것은 바로 선원들이 목숨을 건 고단한 노동을 통해 만들어온 해도들이었다. 망원경을 발명한 공로는 종종 갈릴레오에게 돌아가곤 했다. 책은 "망원경을 처음 발명한 사람이 렌즈를 우연히 맞춰보던 네덜란드 안경 제작자라는 사실을 갈릴레오는 알고 있었다"고 언급한다. 그렇다면 망원경을 가능케 한 볼록렌즈는 누가 만들었을까. 학자들은 옥스퍼드의 로버트 그로스테스트 등 과학자들의 결실이라 주장하는데 기실 1280년대 유리ㆍ보석 절단공들이 볼록렌즈의 주역이라고 책은 바로잡는다.
현대 외과의학을 있게 한 중요한 수술법인 제왕절개술은 의학을 제대로 공부한 과학자의 덕이 아니다. 가축을 거세하는 일을 하던 스위스의 한 남자가 1500년경 산모를 개복하고 그의 성공이 널리 알려진 게 제왕절개술 보편화의 시발점이다.
달의 위치에 관해 꼼꼼히 기록해 천문학의 발전을 이끈 선원과 어부, 재료과학의 진보에 앞장선 광부와 대장장이, 대학연구실이 아닌 차고와 다락방에서 과학혁신을 이룬 비제도권의 젊은이 등 엘리트 과학자 집단이 아닌 일반인의 과학사는 책의 두께만큼이나 두툼하고 풍성하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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