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동포 노인들에게 단골쉼터로 인기 있는 미국 뉴욕의 한 맥도널드 매장이 커피 한 잔을 놓고 서너 시간씩 자리 차지하는 노인들을 경찰까지 불러 강제로 내쫓아 한인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 일부 한인들은 "인종ㆍ노인차별"이라며 맥도널드 불매운동까지 선언했다.
문제의 가게는 한인들이 많이 사는 뉴욕시 퀸즈구 플러싱의 작은 매장이다. 이곳에선 한인 노인들이 모여 수시간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흔하게 목격할 수 있다. 인근 노인센터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한국음식을 먹은 뒤 이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기에 좋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장측은 노인들이 중간크기 커피(1.09달러)나 감자튀김(1.39달러)을 시켜놓고 거의 하루 종일 앉아 있다고 불평한다. 문을 여는 오전 5시부터 밤 늦도록 앉아 있는 노인도 있다는 것이다. 다른 손님들이 자리가 없어 그냥 나가는 상황까지 벌어지자 매장측은 '20분 안에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안내문을 써 붙이고 이를 초과한 손님들에게 나가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인들이 부당하다고 따지고 들자 매장의 요청으로 경찰이 출동한 것만 지난해 11월 이후 네 차례나 된다.
지난 2일에도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던 한인 노인들이 매장측이 부른 경찰에 쫓겨났다. 한인 이모(77)씨는 두 시간 넘게 앉아 있다가 나가달라는 요구를 받고 골목길을 한번 돈 뒤 다시 들어오기도 했다. 최모(77)씨는 "이렇게 많은 커피를 어떻게 20분 안에 마실 수 있겠느냐"며 매장 측 요구가 지나치다고 항의했다.
매장 매니저인 마사 앤더슨은 "여기는 노인센터가 아니다"며 "다른 고객들이 자리가 없어서 환불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관할 109뉴욕경찰은 경찰이 이런 가게에 출동하는 경우는 대부분 10대들의 소란 때문이라며, 70대 노인들의 자리싸움 중재에 난처해 하고 있다. 인근에 있는 버거킹이나 또 다른 맥도널드 매장에도 노인들이 오래 앉아 있는 경우가 있지만 공간이 넓어 별다른 다툼은 없다.
상황을 보다 못한 뉴욕한인학부모협회는 16일 매장 앞에서 "맥도널드가 자만심에 빠져 인종ㆍ노인 차별을 하고 있다"며 불매운동을 선언했다. 현지 경찰서도 방문해 한인 노인들을 범죄자 취급하는 데 항의했다.
논란이 커지자 매장 측은 "영업환경을 개선해 모든 손님이 즐길 수 있는 장소로 거듭나겠다"며 진화에 나섰다. 맥도널드의 아시아마케팅 담당인 IW그룹 역시 "지역의 인사들과 이번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며 "해결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했다. 한국계 론 김 뉴욕 주 하원의원은 매장 체류 제한시간을 20분에서 1시간으로 늘리는 방안을 맥도널드측과 협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갈등에 대해 현지 네티즌들은 "맥도널드는 노인을 공경하는 아시아 문화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다른 곳은 1.99달러에 최소 두 시간 앉아있을 수 있는데 20분이 말이 되느냐" "맥도널드는 이번 기회에 노인들을 위한 별도 공간을 만들어 이미지를 좋게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뉴욕=함지하 미주한국일보기자 jiha@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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