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의 역사는 사회 변동의 역사다. 패션에는 계급과 이데올로기, 성 역할 등 다양한 기호가 담긴다.
은 20세기 남성복을 돌아봄으로써 당대 역사와 문화를 되짚어 보는 책이다. 역동적 변화를 겪어온 여성 패션과 비교해 남성 패션을 지루하고 따분하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지만 패션 디자인과 미술사를 전공한 저자는 "20세기는 남성복이 여성복에 훨씬 더 큰 영향을 준 시기"라고 말한다. 남성 패션의 다양성과 독창성을 증명하기 위해 패션 일러스트와 광고, 잡지 기사, 다큐멘터리 사진, 디자이너의 컬렉션 등의 풍부한 자료를 실었다.
마치 남성복 박물관을 둘러 보듯 이미지 자료를 따라가다 보면 지난 100년 남성 패션의 면면과 그 이면에 담긴 사회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수트' '노동자와 군인' '운동선수' '반항아' '미디어 스타' 등 현대의 패션 흐름으로까지 이어지는 키워드를 각 장의 주제로 삼았다. 책은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전후로 시기를 나눠 전쟁 이후의 상실감과 사회 계급 구조 붕괴가 패션에 미친 영향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1909년 프록 코트(상의 길이가 무릎까지 오는 코트) 차림의 오페라 가수 로버트 레드포드의 사진은 제1차 세계대전 전까지 더블 브레스트 형태의 프록 코트가 도시에서 정장으로 통용됐음을 보여 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는 군복의 많은 아이템이 암시장을 통해 패션 아이템으로 차용됐고 일부는 관습적인 사회에 저항하는 상징으로 활용됐다. 1943년 영국 해군 포병들의 사진에서는 더플 코트가 눈에 띈다. 더플 코트의 상징인 토글 고리 잠금 부분은 본디 북극처럼 추운 지방에서도 장갑을 끼고 고정하기 쉽도록 고안된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을 덧붙여 놓았다. 1944년 파일럿들의 사진에서 발견되는 양가죽 안감 항공 재킷은 요즘 젊은이 사이에서 유행하는 무스탕 재킷과 많이 닮았다.
남성 패션의 역사를 간략하면서도 정확하게 이해하고 싶은 패션학도들이 가장 반길 책이지만 옷 입는 요령을 익히는 대중서로도 유용한 책이다. 물론 여자 친구와 어머니가 홈쇼핑 채널에서 선택한 옷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받아 입는 남성은 예외겠지만.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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