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있는 교과서'의 허구위안부·난징 대학살 등 존재 부정설 함께 기술…역사학자 생각과 다른 정부견해도 기입 의무화학생들 그릇된 판단 유도정부 개입의 문제점입맛대로 검정 나서면 출판사 자기검열 뻔해우경화 더욱 가속 불보듯검정체제→국정체제 전환? 한국서도 가능성은 희박
"아베 총리가 교과서 검정에 적극 개입하는 것은 일본을 전쟁이 가능한 나라로 만들기 위해 자신의 행동에 동조하는 사람을 늘리기 위한 것이다."
일본내 우익교과서 채택반대 운동을 주도해온 다와라 요시후미(俵義文ㆍ73)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네트워크21' 사무국장은 17일 문부과학성이 정부 견해를 존중하도록 교과서 검정기준을 개정하겠다는 발표의 의도를 이렇게 해석했다. 도쿄 지요다구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검정기준 강화는 사실상 국정교과서를 만드는 것으로 정부의 견해를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주입시키려는 무서운 의도"라고 지적했다.
다와라 사무국장은 1965년 이에나가 사부로(家永三郞) 당시 도쿄교육대 교수가 정부의 지나친 교과서 검열은 위헌이라며 제기한 소송을 도우면서 교과서 관련 운동에 발을 들인 후 50년 가까이 한 우물을 파고 있다. 1998년 교과서 네트워크를 결성한 그는 2000년 일본의 우익단체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의 왜곡교과서를 일선 학교가 채택하지 못하도록 반대 운동을 펴 성과를 거뒀다. 최근에도 아베 총리가 주도하는 교육재생의 허구성을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아베 총리가 교과서 검정에 지나치게 손을 대고 있는 것 같다.
"아베 총리는 교육재생이라는 허울을 내세워 일본의 교과서 내용을 발본적으로 바꾸고 싶어한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 난징 대학살, 강제 징용 등 일본이 저지른 침략전쟁과 아시아에 대한 가해행위를 자학사관이라는 이름 아래 모두 지우려는 것이다."
-문부과학성은 교과서 검정기준 개정 이유를 학생들에게 균형 있게 가르칠 수 있는 교과서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데.
"이를 토대로 한다면 교과서에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 내용을 기술할 때 위안부의 존재 자체가 사실이 아니라는 설이 존재한다는 내용도 포함해야 한다. 난징대학살도 마찬가지다. 이런 내용은 자민당과 일부 우익인사들만 주장하는 것이지만 균형을 맞춘다는 차원에서 이런 내용이 교과서에 실린다면 학생들은 이를 진실로 받아들일 우려가 있다. 한국의 뉴라이트 교과서 집필자들이 주장하듯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 지배하면서 나쁜 일만 한 것은 아니라는 내용도 교과서에 실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아베 정권이 또 어떻게 교과서 검정에 개입하고 있는가.
"아베 정권은 특정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 정부의 견해가 있다면 반드시 기입하도록 했다. 이에 따르면 아베 총리가 2007년 총리 재임 당시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연행은 없었다고 각의 결정한 내용이 교과서에 그대로 실리게 된다. 또 1965년 한일기본협정으로 위안부 및 강제 징용 문제는 완전히 해결됐다는 것이 정부 견해라는 내용도 담길 수 밖에 없다. 역사 학자들의 공통된 생각과 아베 정권의 견해가 일치하지 않는 점이 많다. 정부 견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에게 그릇된 판단을 유도할 수 있다."
-정부의 교과서 개입으로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나.
"정부의 마음에 들지 않는 교과서에 대해 검정 불합격 판단을 내릴 수 있다. 교과서 집필자에 반정부 학자가 참가했다는 이유로 거부할 수도 있다. 교과서를 제작하는 출판사가 막대한 손실을 감내하면서 정부에 반하는 내용을 집필하기 어려워진다. 결국 스스로 자기검열을 통해 정부 눈치보기에 나설 것이다."
-교과서 검정때 주변국가를 배려한다는 근린제국조항을 수정하겠다는 발표도 있었다.
"아베 정권은 당초 선거 공약을 통해 근린제국조항 수정을 발표했지만, 최근 시모무라 하쿠분(下村博文) 문부과학장관은 이 조항을 그대로 두겠다고 말했다. 이를 수정하는 것은 한국, 중국 등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깨는 것인 만큼 부담이 있었을 것이다. 대신 아베 정권은 교과서 검정에 별도의 기준을 만들어 근린제국조항 유명무실화를 꾀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잘 깨닫지 못하고 있다."
-아베 총리의 의도대로 만들어진 교과서로 배우는 아이들의 역사인식은 어떻게 될까.
"최근 아사히신문 조사를 보면 일본의 과거 전쟁을 침략전쟁이 아니라고 인식하는 젊은이가 30%에 이른다. 사실상 국정교과서가 된 검정교과서가 시중에 판을 치면 향후 수년 내에 이 수치는 급속히 상승할 것이다. 가뜩이나 우경화하는 일본 사회의 역사 인식이 더욱 후퇴한다. 이런 인식하에서 아시아는 물론 국제사회와 정상적인 대화를 할 수 있을 지 우려된다."
-아베 총리의 노림수는 뭔가.
"일본을 전쟁이 가능한 나라로 만들기 위해 집단적 자위권 헌법해석 변경, 특정비밀보호법 강행 처리 등을 통해 헌법9조의 무력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는 전쟁이 가능한 국가에 대한 국민적인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과거 일본이 침략전쟁을 벌였다는 역사인식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국에서 국정교과서 부활 움직임이 있다.
"국가가 국정교과서제도를 포기하고 검정교과서제도로 바꾼 이상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본다. 특히 민주주의가 정착된 한국에서 그런 시도는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일본에서도 1960년대 초 자민당을 중심으로 국정교과서 부활 주장이 있었지만 문부과학성이 불가능하다는 내용의 비공식 문서를 채택했고 이후 일본 정치권에서 누구도 국정교과서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 아베 총리는 대신 검정 제도를 강화해 사실상 국정교과서를 만들려는 것이다."
도쿄=글ㆍ사진 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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