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임금인상 시위 중 공수부대 유혈진압 5명 희생 해당 기업측서 유발 의혹방글라데시 한국계 공장서도 여성근로자 시위중 총격 사망저임금 지역 '마지막 종착지' 외국 봉제업체 등 대거 진출"정부서 유혈진압 했더라도… 진출 기업도 일정부분 책임" 국제사회 가이드라인 준수 필요
동남아시아에 진출한 한국 봉제업체 앞에서 임금인상 시위를 하던 현지 근로자들이 당국의 무력진압으로 숨지는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3일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남부의 카나디아공단에 입주한 약진통상 앞에서 5명이 진압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했고, 9일에는 방글라데시 최대 무역항 치타공에 조성된 한국수출가공공단에서 공단 근로자 1명이 경찰이 쏜 총에 맞고 숨졌다. 공수부대가 이례적으로 시위 진압에 나섰던 캄보디아 사태를 둘러싸고 해당 기업과 한국 대사관이 유혈사태를 유발했다는 의혹까지 일고 있다.
역내 최빈국에 속하는 캄보디아와 방글라데시는 노동집약형인 봉제산업을 국가 기간산업으로 삼고 임금을 낮게 통제하고 외국기업을 우대해왔다.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기존 진출국에서 임금 인상으로 수익 악화를 겪던 한국업체들이 대거 이들 나라로 생산기지를 옮기고 있는 이유다. 그러나 근로자 1,127명이 비명횡사한 지난해 4월 방글라데시 의류공장 붕괴 참사를 계기로 두 나라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일대에 최저임금 인상 요구가 거세지면서 한국 봉제업체의 경영 환경도 급변하고 있다. 임금 인상 요구를 억눌러 수익을 최대화하려는 기업 논리와 근로자들의 열악한 처우를 국제기준에 맞게 개선하라는 사회적 요구 사이에서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동남아 최빈국으로 번진 임금인상 요구
동남아시아 임금인상 시위가 촉발된 곳은 방글라데시다. 세계 2위 의류 수출국인 방글라데시의 열악한 근로 조건은 지난해 4월 수도 다카 인근의 의류공장 라자플라자가 붕괴하면서 극적으로 드러났다. 8층짜리 건물에 입주한 의류공장 5곳은 건물 외벽에 심각한 균열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고도 근로자 3,100명을 계속 출근시켰다. 참사 이후 수십만명 규모의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와 최저임금 인상을 비롯한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했다. 당시 의류산업 근로자의 월 최저임금은 3,000다카(39달러)로 건설업 최저임금(9,982다카)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최저 수준이었다. 방글라데시산 의류의 최대 수입처인 유럽연합(EU)이 무역 제재를 검토하겠다고 나선 상황에서도 노동자 시위에 강경 대응으로 일관하던 정부는 결국 지난달 의류업체 노동자의 최저임금을 77% 인상해 68달러로 책정했다. 그러나 8,000다카로 올려달라는 노조 요구에 못 미치고 이달 5일 치러진 총선에 야당이 불참하며 정국 불안이 가중되고 있어 시위가 재개될 가능성이 있다.
최저임금 인상 시위는 캄보디아,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의류산업 비중이 높은 국가들로 퍼졌다. 인도네시아는 지난해 11월 최저임금 50% 인상과 노동조건 개선을 조건으로 300만명이 참가하는 총파업을 단행해 정부를 압박했다. 베트남 정부도 근로자 요구에 밀려 이달 하노이, 호치민 등 주요 도시의 최저임금을 14~17% 올리고 향후 5년 동안 최저임금 수준을 배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물가가 치솟으면서 실질임금이 감소한 것도 시위 확산에 영향을 줬다. 최근 5년 사이에 방글라데시 물가는 37.2%가 올랐고, 캄보디아와 인도네시아는 각각 12.1%, 21.1%의 물가상승률을 기록했다.
캄보디아 의류산업 노동자들은 지난달부터 파업에 들어갔다. 현행 월 80달러인 최저임금을 두 배로 올려달라는 것이 요구 조건이다. 집권당이 승리한 지난해 총선을 부정선거로 규정하며 재선거를 요구하는 야권과 총파업을 주도하고 있는 8개 노조가 연대하면서 시위 규모가 확장됐다. 참사가 일어났던 카나디아공단 시위 당시에는 1만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참가했다.
시위는 왜 유혈사태로 비화됐나
훈센 총리가 이끄는 캄보디아 정부는 지난달 25일 총파업이 시작된 이래 한동안 방관하는 태도를 취했다. 30일에는 최저임금을 2월부터 100달러로 인상하겠다는 타협안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이달 2일 프놈펜에서 열린 평화시위에 경찰과 군을 전격 투입해 강제해산한 것을 시작으로 강경 대응에 나섰다. 3일 한국기업 앞에서 근로자 5명이 희생된 유혈진압을 펼친 데 이어 4일엔 야당 집회를 강제해산하고 야당 지도부 검거에 나섰다. 정부의 시위 대응방침이 돌연 선회한 것을 두고 "야권이 5일 개최하겠다고 공언한 100만명 규모 반정부시위에 정권이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정연식 창원대 교수)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제 인권·노동단체들은 외국계 사용자단체의 로비가 폭력적 시위 진압을 유발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특히 외국계 봉제업체들의 이익단체인 캄보디아의류제조업협회(GMAC)는 2일 정부에 강경한 조치를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ㆍ대만 기업을 주축으로 600여 기업을 회원으로 두고 있는 이 단체에는 한국기업 60여곳이 가입돼 있다. 노동자 파업을 문제 삼아 정부가 주도하는 최저임금 협상 참가를 거부한 GMAC는 파업으로 인해 2억달러 이상의 피해가 발생했고 국제 바이어 주문이 20~30% 줄어들었다고 언론에 주장하는 등 시위를 비난하는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또한 조업 차질, 기물 파손 등 파업으로 인한 손해를 배상받겠다며 총파업을 주도한 노조단체 6곳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캄보디아 유혈사태가 정부의 강경 대응에 따른 '예고된 참사'였다면 방글라데시 치타공의 근로자 사망은 사건이 발생한 공단의 내부 사정과 관련 있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이날 시위는 월급을 받아본 한국계 기업인 카나풀리신발산업 근로자들이 사측에 수당이 줄었다고 항의하는 과정에서 즉흥적으로 일어났다. 통근수당은 줄고 식대 공제액은 늘었다는 근로자 대표들의 항의를 받던 사측아 신변상 위협을 이유로 경찰에 신고하면서 당초 100~200명 수준이던 시위대 규모가 수천명으로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시위대와 경찰이 밤늦게까지 대치하던 과정에서 카나풀리신발산업에서 일하는 20세 여성 근로자가 머리에 총상을 입고 사망했다.
이날 참사는 해당 회사가 입주한 한국수출가공공단이 최저임금 인상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점과 관계 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의류업계 최저임금을 올리면서 수출가공공단을 적용 대상에서 제외했다. 수출가공공단은 방글라데시가 외국기업 유치를 위해 조성한 공단으로 법인세 10년 면제, 원자제 무관세 수입 등의 특혜를 제공한다. 한국수출가공공단 입주사들은 기존 최저임금보다 많은 5,800다카를 근로자들에게 지급해오다가 인상된 의류업체 최저임금을 반영해 급여를 자율 조정했다. 결과적으로 기본급과 월급 총액은 올랐지만 근로자들과 충분한 협의 없이 일부 수당을 줄이면서 시위를 촉발했다.
한국업체 앞에서 참극이 벌어진 이유
캄보디아는 한국 봉체업체들이 2000년대 들어 적극 진출하고 있는 신규 생산기지다. 이요한 라오스 수파노봉대 교수는 "저임금 노동력 활용을 위해 베트남, 인도네시아 지역에 집중 투자하던 한국 중소기업들이 이들 국가에서 임금과 땅값이 상승하자 이를 대체하는 지역으로 캄보디아를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2002년 총선에서 훈센 총리가 이끄는 여당이 압승하면서 정치적 안정이 이뤄진 점, 인구의 60% 이상이 24세 이하의 청년층이어서 급격한 임금상승 가능성이 적은 점도 한국 기업을 유인했다. 수도 프놈펜을 중심으로 봉제업체만 80여곳이 진출한 한국은 캄보디아에서 중국 다음 가는 주요 투자국으로 대접받고 있다.
그렇다고 한국업체 앞에서 참사가 일어난 것을 우연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특히 유혈진압이 일어나기 앞서 한국 대사관이 훈센 총리에 한국기업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요청하는 서한을 보내고 업체 대표들과 군 수도경비사령부에 방문해 '보호조치'를 부탁했다는 의혹이 보도되면서 한국에 대한 비난 여론이 조성되고 있다. 한국 정부와 기업들이 이기적 계산에 매몰돼 현지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를 등한시한다는 것이다. 특히 권위주의적인 캄보디아 정권이 노동자 파업이나 시위를 무력진압한 전례가 빈번하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공권력 투입 요청에 더욱 신중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글라데시 사태의 경우도 노사 간 첨예한 사안인 임금조정 문제를 충분한 협의 없이 처리했다는 점에서 한국기업이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카나풀리신발산업의 모기업이자 방글라데시 최대 봉제업체인 영원무역은 2010년에도 임금 인상을 둘러싼 대규모 노사분규를 겪은 경험이 있다. 근로자 3명이 숨진 당시 사태 역시 최저임금 상향이 배경으로, 영원무역은 당시 현지 근로자들의 성과를 자의적으로 평가해 급여를 결정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다국적 기업에 요구되는 국제기준 준수해야"
해외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이 현지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마찰을 빚는다는 비판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지난해 인도네시아의 삼성 하청업체들이 지역 폭력배를 동원해 노조 파괴 공작을 했다는 의혹이 나온 것이 가까운 사례다. 나현필 국제민주연대 사무처장은 "한국 기업들은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고 사내에서 특유의 권위주의적 문화를 조성하는 까닭에 다른 외국 기업보다 노동자들과 갈등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국기업들이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수준의 사회적 책임을 수행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다. 기본적인 기준으로 제시되는 것이 경제개발협력기구(OECD)가 마련한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 준수다. 해외 진출 기업에 대한 권고를 담은 이 지침에는 ▦현지 노동자의 인권 존중 ▦근로자와 가족들이 기본적 요구를 충족할 만큼의 임금 지불 ▦단체교섭에 부당한 영향을 행사하는 행위 금지 등의 내育?담겼다.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는 "이번 캄보디아 사태의 경우 유혈진압의 주체가 정부였다고 해도 연루된 해외 진출 기업과 모국 정부가 일정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며 "OECD 다국적 기업 가이드를 포함한 일련의 국제 기준이 세워지면서 다국적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묻는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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