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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진짜 작품 만들 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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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진짜 작품 만들 수 있을 듯"

입력
2014.01.16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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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호(69) 감독이 데뷔 40주년을 맞았다. 이는 영화 '별들의 고향'(1974)의 개봉 40주년을 의미하기도 한다. '별들의 고향'이 1970년대 청춘 문화를 대변했듯 이장호란 이름 석자는 70년대 청춘의 또 다른 아이콘이었다.

서울영상위원회 위원장과 한국방송예술교육진흥원 부학장으로 바쁜 일과를 보내는 이 감독을 16일 서울 신촌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이 감독은 데뷔 40주년을 맞아 자신의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의 내용을 옮긴 책 를 최근 선보였고 19년만의 신작 '시선'의 개봉(4월)도 앞두고 있다.

이 감독과 '별들의 고향'은 동의어다. 이 감독은 "해방 이후 서구식 교육의 첫 수혜자였던 한글 세대의 문화가 처음으로 꽃 피운 것"이라고 '별들의 고향'을 평가했다. 하지만 그는 "개인적으로 부끄럽다"고 말했다. "단편 습작조차 만들어보지 않고 조감독 생활하며 어깨너머로 배운 연출법을 그대로 사용한" 영화였기 때문이다. 그는 "원작자(최인호)가 좋은 글을 썼고 그 글에 힘을 실어 만들었기에 좋은 결과가 나온 듯하다"고 했다.

'별들의 고향'의 동명 원작 소설을 쓴 최인호 작가는 이 감독의 중ㆍ고교 동창이다. 이 감독은 친구의 소설을 영화로 옮기고 싶었으나 당대 베스트셀러를 둘러싼 경쟁은 치열했다. '미워도 다시 한번'으로 이름을 날린 정소영 감독과 문예영화의 대가 최하원 감독 등이 경쟁자였다. 신출내기 감독 지망생의 기를 죽이기 충분했다. 영화 판권 결정권이 출판사에 있어 친구에게 기댈 수도 없었다.

"출판사 사장을 설득하기 위해 모교인 서울고 동창회 명부를 구해 책 세일즈를 했어요. 의욕을 높이 샀는지 사장이 각서를 하나 써주더군요. 영화화하면 판권을 제게 준다고요. 그때부터 제작자들이 제게 몰려들었어요."

엔 이 감독의 영화계 입문 및 감독 데뷔 과정과 영화계 활동 등이 기술돼 있다. 정부에서 영화 검열을 담당하던 아버지 덕에 남들이 못 보던 영화를 보고 자란 어린 시절, 아버지의 소개로 만난 신상옥 감독과의 인연, 이 감독의 활동 정지를 부른 대마초 파동의 뒷이야기 등이 눈길을 끈다.

책 속엔 신상옥 감독 연출부 시절의 고단했던 사연도 담겨있다. 이 감독은 어느 날 여배우가 투신하는 장면을 찍기 위해 마네킹을 절벽 아래로 던지는 임무를 맡게 됐다. 힘껏 던진 마네킹이 절벽 중간 나무에 끼었고 이 감독은 밧줄을 몸에 감고 내려가 마네킹을 아래로 떨어트렸다.

촬영을 끝내고 하산했더니 신 감독이 기다렸다가 "장호, 수고했다"라고 말했다. "이 새끼" "임마"만 연발할 뿐 4년 동안 이름 한번 불러주지 않던 신 감독이었다. "내가 왜 이걸 하나 생각하며 오직 여배우 밖에 낙이 없었던" 이 감독은 "그 뒤 (영화에 대한) 의욕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를 천직으로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고도 회고했다. 이 감독은 신상옥감독기념사업회 회장을 맡고 있다.

충무로 최초의 스타 감독이었던 이 감독의 영화 인생은 갈지자였다. 80년대 초반 그는 '바람 불어 좋은 날'과 '바보선언'처럼 사회비판적인 영화를 만들면서도 '어우동' 등 상업영화를 연출했다. 그는 "난 이제까지 연습 인생을 살았다"고 했다.

"1980년에 기독교에 입문했는데도 기독교 영화 '낮은 곳으로 임하소서'(1982)를 성경 한번 안 읽고 만들었어요 '무릎과 무릎 사이' '어우동' 등으로 돈도 벌고 타락할 때까지 타락한 뒤에야 다시 교회로 돌아갔고요. 96년 새 가정에서 아들이 생기면서 진정으로 회개한 듯해요."

이 감독은 "지난 작품들이 자꾸 부끄럽다"며 "내 세계관과 가치관이 확립된 이제야 진짜 작품을 만들 수 있게 됐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시선'은 인생 후반전의 데뷔작"이라고 말했다.

이 감독은 차기작 두 편도 마음에 두고 있다. 한 편은 "70년대 베트남 보트피플을 구한 한 원양어선 선장의 실화가 될 것"이라고 했고 다른 한편은 "내 인생의 참회록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 감독이 "참회록 영화는 최인호의 유고집 에 대한 답신이며 제목은 '눈물에 대한 회신'이 될 것"이라 말할 때 그의 눈동자는 촉촉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선임기자 s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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