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15일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증설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힌 것은 일본을 겨냥한 다목적 경고 카드로 해석된다. 국제사회 지도국으로 부상하려는 일본의 시도를 차단하는 한편, 주변국 반발을 무시한 채 우경화로 치닫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일방주의'에 경종을 울리려는 것이다.
인도 공영방송과의 인터뷰인 만큼 박 대통령은 '일본'이라는 단어는 아예 꺼내지 않았다. 1945년 창설 이후 5개국(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으로 고정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개편에 대해 소신을 밝힌 게 전부다. 청와대 관계자도 "박 대통령이 특정국을 지칭했다기 보다는 안보리 개혁 방향과 선출방식에 대한 일반론적 입장을 피력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세계 지도국의 보편적 기준을 제시한 게 결국 우경화의 일본 비토(거부)를 드러낸 것이란 분석이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한일간의 갈등을 원하지 않는 미국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어 수위를 조절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우회 발언은 오히려 국제사회에서 일본을 고립시키는 효과가 더 커 보인다. 내년 유엔 창설 70주년을 맞아 안보리 개편 논의가 본격화될 조짐을 보이는 상황과도 맞물려있다. 정부 관계자는 "한일관계가 파국으로 치닫는 상황을 감안하면 누가 봐도 일본을 옥죄려는 강한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며 "박 대통령의 시선은 인도를 바라보지만 칼날은 일본을 향해 겨눈 모습"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안보리 상임이사국 확대에 강하게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은 자칫 아베 총리가 주창하는 일본의 '적극적 평화주의'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기 때문이다. 상임이사국은 무력개입과 경제제재 등 분쟁해결에 거부권을 갖고 있어 동북아에서 유사 상황이 발생할 경우 힘의 균형이 급격히 일본으로 쏠릴 우려가 크다.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에 대해 줄곧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의 리더십을 갖추지 못했다'고 비판해 온 박 대통령으로서는 이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안보리 상임이사국 문제로 한일 양국이 맞붙은 사례는 처음이 아니다. 아베 총리 집권 1기인 2006~2007년 안보리 개편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일본이 상임이사국 확대를 위한 국제여론 환기에 나섰고, 한국은 적극 저지에 나섰다. 외교 소식통은 "당시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막기 위해 백방으로 적극적인 네거티브 캠페인을 벌였다"고 말했다.
외교가에서는 상임이사국 증설을 둘러싼 한일간 대립이 갈수록 격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일본은 함께 'G4'로 불리며 상임이사국 진출을 시도하는 인도 독일 브라질과의 연대를 부쩍 강화하고 있다. 또 아베 총리가 연초부터 아프리카 지역을 돌며 막대한 지원을 약속하는 것도 우호적 여론 조성을 위한 사전 포석이다.
이에 맞서 한국은 '상임증설반대 중견국가 그룹(UFC)'에 속해 일본을 견제한다는 전략이다. UFC는 이탈리아(독일 견제), 아르헨티나(브라질 견제) 등 인접 국가의 상임이사국 진출에 반대하는 12개 중견국 모임인데, 우리 정부는 16일 멕시코에서 열리는 UFC 차관급 회의에 외교부 조태열 2차관을 파견한 상태다. 정부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중견국 외교를 강조해 온 만큼 이번 회의를 통해 우리의 역할이 좀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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