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올랐다. 1㎏에 1만7,000원, 씨알이 굵은 놈은 1만9,000원이다. 껍질 떼고 난 무게는 10분의 1이 될까 말까 할 테니, 숫제 전복 값이다. 시장 골목에 층층이 쌓인 20㎏짜리 망태가 돈 무더기로 보인다. 참꼬막 말이다.
겨울에 나선 보성 여행길, 공식처럼 벌교역전 수산시장부터 찾아 갔다. 그런데 꼬막이 더 이상 내가 알던 그 꼬막이 아니다. 이 갯것에 대한 조정래의 묘사 "간간하고 졸깃졸깃하고 알큰하고 배릿하다"는, 값이 무척 헐쭉하다는 사실이 바탕이 돼줘서 그토록 적절히 느껴졌을 텐데, 이젠 이 배린 맛에도 외국물 먹은 셰프의 혀 꼬부라진 소리가 더 어울릴 것 같다. 값으로만 따지자면.
"몰러. 왜 꼬막이 안 나는지. 뭔 조수 관계로 그라겠제. 요 때가 꼬막이 젤로 실할 땐디, 너무 비싸부린께 사묵을 사람이 있을랑가 모르겄소."
혹 찾아오는 손님이 많다고 읍내에서 유독 비싸게 받는 게 아닌가 싶어 꼬막을 캐는 대포리로 가봤다. 바가지가 아니었다. 40여년 꼬막을 캤다는 마을 주민 정선옥씨는 몇 해 전부터 참꼬막이 통 없다고 했다. 이 마을에서 상인들이 차로 실어가는 시세가 1㎏에 1만3,000원 정도 했다. 길쭉한 판(뻘배)을 갯벌에 깔고 바닥을 기면서 꼬막을 캐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날은 춥고… 어차피 꼬막 캐기도 힘등께. 요샌 꼬막보다 맛(조개)을 주로 캐." 갯벌에 참꼬막이 없으니 대신 배를 타고 나가 바닷속의 새꼬막을 긁어온다. 1㎏에 3,000~4,000원 선. 흔히 먹는 꼬막이 대부분 이것이다.
꼬막은 남도 겨울 밥상의 대표 메뉴다. 제 아무리 맛난 것을 차려놔도 꼬막이 없으면 쌀밥이 빠진 것만큼 허전하다. 참꼬막은 썰물 때 뭍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새꼬막보다 성장이 더디다. 그래서 크기가 작지만 맛은 알차다. 보성은 전국 꼬막의 90% 이상이 생산되는 곳이다. 참꼬막은 벌교 앞바다 여자만에서 나는 걸 최고로 친다. 여자만 갯벌은 모래가 전혀 없어서 이물질이 없다. 적당히 해감한 다음 살짝 데치기만 하면 된다.
다시 벌교 읍내. 한 집 건너 한 집이 꼬막을 파는 식당인데 기어이 참꼬막을 맛보고 싶다면 수산시장 내 '초장집'이라고 써 붙인 곳을 찾아가면 된다. 시장에서 직접 참꼬막을 사서 들고 가면 한 사람 당 3,000원 정도 받고 삶아준다.
배를 채웠으니 동네를 둘러보자. '보.성.벌.교.보.성.벌.교…X발, 확 XX을 @# &X&*% @ $…' 이문식이 이끄는 백제 욕쟁이 특공대의 고향을 벌교로 설정했다가 이준익 감독이 고소까지 당하는 해프닝을 빚었던 영화 '황산벌'(2003)을 제외하면 벌교를 배경으로 한 문화 자산은 없었다. 본래 없는 게 아니라 있지만 드러낼 수 없었다. 분단문학의 거대한 장강(長江) 의 고향이 실은 이곳인데 이 책에 붙은 '불온' 딱지가 떨어진 세월이 얼마 길지 않다. 하지만 일단 그게 떨어지고 나자 벌교읍은 태백산맥으로 먹고 살 작정을 단단히 한 듯 보인다. 작품에 등장하는 현부자 집, 소화의 집, 김범우의 집, 남도여관 등등을 근자에 모두 태백산맥 테마로 (신축에 가깝게) 복원했다.
제석산(560m) 중턱, 현부자 집 곁에 2008년 세워진 태백산맥문학관은 작가 조정래의 '글감옥'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원고지 1만6,500장을 쌓아 태백산맥을 지을 때 벌교 곳곳을 취재하며 그린 스케치, 깨알 같은 글씨가 빼곡한 노트, 수많은 등장 인물의 계보도, 육필 원고 등이 전시돼 있다. 작품 첫 장면의 배경인 현부자 집(실은 박씨 문중 소유다)은 한옥과 일본식 가옥의 양식이 결합된 독특한 집이다. 소화가 정하섭의 눈물을 닦아주던 마당엔 100년 가까이 된 동백나무 한 그루가 구불구불 가지를 드리우고 이른 봄이면 꽃을 틔운다. '남도여관'이라는 이름으로 책에 등장하는 읍내의 보성여관은 옛 정취가 소복이 남아 있는 곳. 돈을 꽤 들여 보수한 일본식 가옥 구조의 옛집은 카페와 문화 체험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벌교와 붙어 있는 득량면, 여기 기차역 주변 오래된 골목이 최근 또 새롭게 단장했다. 새로운 걸 짓는 대신 아예 헌 티가 폴폴 나게 낡은 물건들을 잔뜩 모았다. 그랬더니 되레 동네가 멀끔해 보인다. 말하자면 빈티지의 역설. 여기서 40년 넘게 이발소를 운영한 공병학씨 아들의 작품이다. 실제 영업을 하는 곳은 이발소와 빨간 공중전화기가 달린 다방 하나가 다다. 하지만 불량식품 파는 점방, 슈퍼 마징가 파는 장난감 가게, '한 시간에 50원' 하는 만화방을 찾아오는 손님이 더 많다. 1970, 80년대의 추억을 찾아온 여행자들이다. 구경하는 건 공짜다. 입장료라도 좀 받지 그러냐니까, 돌아오는 공씨의 말이 무뚝뚝한 듯 정겨웠다. 이곳 보성의 인심이 대개 그렇다 하겠다.
"뭐 다들 미장원 가고 어차피 장사도 안 되는데… 아들 내미가 한다는 대로 냅뒀지 뭐. 돈은 받아 뭐해? 나 죽어불먼 그만이제. 그냥 실컷 구경이나 하고 가."
보성=글ㆍ사진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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