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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1월 16일] 카미노 <1> 시작, 느닷없지만 당연한 질문

입력
2014.01.15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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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나는 여행을 떠났다. 프랑스의 생 장 피드 포르(St.Jean Pied De Port) 에서 시작해 스페인의 산티아고까지 약 800km를 걷는 여행이다. '순례자의 길'이라고 불리는 이 길 위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노란 화살표가 있다. 이 화살표를 놓치지 않으면 길을 잃지 않고 목적지에 닿을 수 있다. 파울루 코엘류가 소설 , 등을 쓰게 된 동기가 된 길이기도 하다. 세계 각국의 다양한 사람들이 이 길에 이끌려 각자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이 길에 선다. 나에게는 두 번째 '카미노(길을 떠남)'다.

국악중학교를 시작으로 국악고등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를 거쳐 대학원 재학 중에 한국과 일본에서 음반을 내고 프로 연주자 생활을 시작했다. 나는 해금연주자다. 대학시절 각종 대회와 공연으로 새벽까지 연습실에 있는 것이 나의 일상이었다. 그럼에도 늘 연습할 시간이 모자랐다. 대학시절 일본에 공연을 갔다가 현지 프로듀서에게 제의를 받아 23살 어린 나이에 첫 음반을 내고 프로 연주자가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음반 제작과 일본 생활은 늘 스스로를 다그치고 밀어붙이게 된 원인이자 목적이었다. 그렇게 달려가듯 살면 가장 먼저 뭔가를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이것을 정말 원하는가'란 질문 따위는 바빠서 떠올려 보지도 못했다. 그리고 1집부터 5집을 만들도록 이어진 연주자 생활은 나에게 아주 잘 맞는 삶인 것 같았다. 멋진 무대, 화려한 내 모습, 너무나 좋아하는 해금, 나의 감성에 이끌리는 사람들, 음반을 만들 때의 그 예민하고 날 선 정신…. 두말할 것 없이 모두가 부러워하는 근사한 삶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모든 것이 낯설어졌다.

무대라는 공간이 두렵고, 그 무대에 오르기 위해 들이는 수많은 시간이 두렵고, 내 앞의 사람들이 두려웠다. 왜 갑자기 그렇게 된 것일까. 나는 살면서 한 번도 의심해 보지 않은 것들에 대한 질문과 함께 표류하게 됐다. '조금만 버티자' 며 버티고, 그 순간이 지나면 잊혀지곤했던 막막한 순간들이 한꺼번에 덮쳐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누구에게도 드러낼 수 없는 나의 무력하고 불안한 시간이 이어졌다. 외롭고 슬펐다.

서른세 살. 느닷없이 질문하게 된 것이다.

'내 가 이것을 정말 원하는가.'

이것은 나에게 정말 황당한 질문이었다. 나의 꿈이라는 것은 언제나 맑게 갠 하늘처럼 명확한 것이었다. 또 그것을 이루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면서 아무리 힘들어도 의심하거나 후회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부터 시작한 해금. 잘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았고, 다른 곳에 눈 돌릴 여유도 없었다. 그런데 갑작스레 해금을 원하지 않는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멈추었다. 나의 시간은 정지되었고, 언제나 나아가려고 했던 그 마음은 어디론가 꼭꼭 숨어버렸다. 나에게 남은 크기를 알 수 없는 시간이 견딜 수 없이 두려웠다.

그리하여 멈추고 떠나게 된 것이다.

길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길의 처음에서 그들은 늘 물었다. "내가 대체 여기 왜 왔을까?" 라고. 생각해 보면 그렇다. 직장을 때려치우거나 휴학을 하고, 하던 일들을 다 그냥 놓아두고 여기에 온 것이다. 800km를. 산만한 배낭을 메고. 오로지 걷기 위해서.

그들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품는 삶에 대한 질문들, 가령 해결되지 않는 문제, 인생의 큰 전환점, 무언가 절실하게 필요한데도 그것이 뭔지 조차 알 수 없는 막연한 결핍 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길의 끝에서 그들은 더이상 질문을 하지 않았다. 아마도 '왜' 라는 것이 필요 없어진 게 아닐까?

길 위에서 뭔가를 느꼈고, 정답은 아니어도 뭔가를 얻었다는 사람들. 본인밖에 모르는, 남에게 설명할 필요도 없는 스스로에게 주는 답. 그들은 길 위에서 자신에게 '시간'을 준 것이다. 사실 답은 우리 안에 있었다. 다만 그 답을 들여다볼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자,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얼마나 시간을 내어주었는가?

꽃별 해금 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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