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신년사를 통해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밝혔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분위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달기는 했지만, 앞으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적극 노력할 것이라 언명하였다. 반가운 일이다. 물론 작년 신년사에서도 남북대결상황을 불식하여야 한다는 취지의 말은 있었으나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직접적인 표현은 없었다. 김정은 체제하의 북한 당국은 이제 남북관계 개선에 매달릴 상황에 처한 것은 분명하다. 고모부 장성택 처형 이후 김 제1위원장은 민심을 달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장성택 처형으로 그가 보인 잔혹성으로 북한 주민들을 떨게 할 수는 있어도 그들의 미움이나 경멸까지도 해소할 수는 없다. 이제 김 제1위원장은 주민생활 향상을 통해 주민들의 사랑과 신뢰를 쌓아 나가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되었다. 북한 당국은 주민생활 향상을 위해서 일차적으로 자력갱생을 통한 노력 경제력 건설에 치중하게 될 것이다. 올해 신년사에서도 경제와 건설이 가장 강조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더군다나 김정일 사망 2주기를 기점으로 하여 김정은이 '유일적 영도자'에 오르는 일종의 '즉위식'을 치른 만큼 이를 뒷받침 할 '물적토대'를 획기적으로 향상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자력갱생을 통한 경제력 건설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북한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경제력 건설 구호를 높여 주민들을 최대한 동원할 수는 있어도 주민들을 만족시켜 줄 경제적 생산을 기대하기는 곤란하다. 결국 기댈 곳은 남한으로부터의 경제적 지원뿐이다. 당분간 중국에 의존하기도 어렵다. 장성택 처형이 중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것도 사실이지만 김정은 체제하의 북한 당국이 중국과 일정한 거리를 둘 필요성이 있어서일 것이다. 사실 김정은 체제는 중국의 개입을 두려워하고 있다. 비록 중국이 동맹관계에 있기는 하나 그들의 체제를 흔들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해서 크게 우려하고 있다. 북한당국이 내부적으로 중국을 '체제의 적'으로 각인시켜 오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렇게 볼 때, 김 제1위원장이 밝힌 남북관계 개선 표명은 어느 정도 그들의 내심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평양당국은 박근혜정부가 제의한 '남북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거부한 것일까. 한마디로 '아직 대화할 때가 아니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화방식도 그들이 일방적으로 따라가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향후 북한은 그들 고유의 '제안'을 내놓고 그들이 말하는 '좋은 계절'을 스스로 선택하고자 할 것이다. '6ㆍ15 선언 기념 공동행사 개최를 위한 실무회담' 제의와 같은 정치적 색채를 띠는 제안이 우선될 것이다. 여기에서 그들이 말하는 소위 '남한 당국의 비방중상' 문제, '무모한 동족대결과 종북소동'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더하여 금강산 관광 재개문제를 동시에 제기하면서 금강산에서 남북이산가족상봉행사 개최를 제의할 수도 있다.
현실적으로 볼 때 이 같은 동시제안을 남한정부가 일괄 수용하기는 곤란할 것이라는 점을 활용하여 북한은 올 한해를 남북관계 개선 주도권 확보를 위한 해로 만들고자 할 것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먼저 북한은 모든 책임을 남한정부에 전가해서 남남갈등을 유발하고, 박근혜정부에 대한 비난을 심화시키는 데 초점을 맞출 수 있다. 이를 통해서 박근혜정부가 어쩔 수 없이 북한 당국이 원하는 '제안'들을 수용하도록 유도하고자 할 것이다. 결국 북한은 올 한해를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적극적인 대화공세를 펴서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장악함으로써 김정은 유일영도체제의 정통성을 높이고자 할 것이다.
북한의 본격적인 대화공세는 아마도 5월 이후가 될 것이다. 남한 당국의 '비방중상' 문제와 한미연합군사훈련을 빌미로 하여 대남 군사적 위협행위를 5월 이전까지 전방위로 전개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북한의 대남 군사적 도발 가능성뿐만 아니라 북한의 대화공세에 대해서도 철저히 대비하여야 할 것이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센터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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