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경기 양주시 노고산 상공. 검정색 UH1H 군 헬기가 이륙한지 5분이 채 지나지 않아 백설이 내려앉은 산자락이 손에 잡힐 듯 다가왔다. 완만한 경사의 산등성이에 부끄러운 듯 몸을 숨기는 고라니 몇 마리가 눈에 띄었다. 기자의 시선이 흰 눈 속에 몸을 숨기는 야생동물을 따라잡는 사이, 옆자리의 병사가 두꺼운 헬기 문을 열어젖혔다. 차디찬 겨울 칼바람이 헬기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머릿속이 얼얼했다. "여기서 떨어뜨리겠습니다." 선임 병사의 한 마디를 시작으로 2명의 병사들이 번갈아 25㎏ 옥수수 사료 포대를 50m 아래 노고산 자락에 밀어 던지기 시작했다. 바람을 가르며 수직 낙하한 사료 포대는 산등성이 곳곳에서 배고픈 야생동물들의 귀한 먹이로 터져 흩어졌다.
이날 오후 경기 양주시 남면 두곡리에서는 '겨울철 야생동물 먹이주기'의 특별한 작전이 펼쳐졌다. 환경부 한강유역환경청과 야생생물관리협회가 공동 주최한 행사에서 야생동물보호단체 회원들과 지역 주민, 군 장병 등 총 500여명은 굶주리는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나눠주기 위해 직접 팔을 걷어붙였다.
참가자들은 삼삼오오 짝을 이뤄 인근 야산을 걸어 이동하며 총 2톤의 옥수수 사료를 뿌렸다. 10m 거리마다 사료 5㎏씩 모아 쌓으며 이동했다. 한낮 기온이 영하 2도까지 떨어진 매서운 추위 탓에 참가자들의 두 볼은 벌겋게 부어오르고 신발은 진흙투성이가 됐지만 표정은 밝았다. 초등학생 딸아이와 행사에 참여한 김지현(38ㆍ여)씨는 "평소 아이들에게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 가르쳐왔다"며 "아이와 함께 직접 먹이를 나눠주면서 추억도 만들고 좋은 배움의 기회를 만들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걸어 오르기 어려운 지역의 먹이 뿌리기는 군 헬기가 도왔다. 제15항공단 소속 UH1H 군 헬기 2대는 번갈아가며 한 번에 사료 15포대(375㎏)씩 총 7톤의 사료를 공중에서 뿌렸다. 노고산, 칠봉산, 감악산, 불곡산 등 경기도 10여 곳의 산에서 굶주리고 있을 야생동물을 위한 먹이가 뿌려졌다. 2인 1조로 헬기에서 먹이를 뿌린 병사들은 무거운 사료 포대를 지고 이느라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오후 5시 '야생동물 겨울철 먹이주기' 작전은 총 9톤의 옥수수 사료를 성공적으로 뿌리며 마무리됐다.
이날 행사에 앞서 야생생물관리협회,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측은 조난을 당해 구조됐다가 치료를 마친 독수리, 황조롱이, 큰소쩍새, 수리부엉이, 금눈쇠올빼미, 쇠백로, 중백로 등 야생 조류 19마리를 자연으로 돌려보냈다. 행사장에는 올무, 덫 등 불법 사냥도구를 전시해 밀렵의 위험성을 알리기도 했다.
김철훈 야생생물관리협회 부회장은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에는 야생동물들의 이동이 어렵고 먹이 찾기도 쉽지 않아 굶어 죽는 개체수가 많다"며 "사람들이 뿌리는 사료가 야생동물들의 겨울나기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양주=글ㆍ사진 김관진기자 spiri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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