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교육부가 교과서 검정의 전 과정을 틀어쥐는 편수조직 운영 방안을 밝힌 것은 학계의 제언과는 정반대 방향이다. 한국일보가 12일 역사교육학회ㆍ한국고대사학회ㆍ한국근현대사학회ㆍ한국역사연구회ㆍ한국현대사학회의 임원을 맡고 있는 학자 33명을 대상으로 긴급 설문조사를 한 결과 97%(32명)가 국정화에 반대하면서 "교과서 서술에 정부 간섭을 줄이고 검정의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진단했었다(본보 13일자 1ㆍ4면 보도).
설문에 참여한 김상기 충남대 국사학과 교수는 "검정제도 자체는 제대로만 운영되면 지금으로도 충분한데 개선을 한다면서 개악을 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교육부는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을 치우친 인사로 임명해 불신을 초래했고, 검정이 다 끝난 교과서를 재차 수정해 교육부 스스로 검정체제를 뒤흔들었다. 나아가 편수조직을 신설해 교과서 집필의 전 과정에 관여할 수 있게 되면 국정체제로 전환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정부의 개입이 가능해진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교육부가 최대한 검정 업무에서 손을 떼야 한다고 공통적으로 지적한다. 권내현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도 "검정제라고 하지만 교육부의 개입 여지가 있는 점이 문제"라며 "정치권의 개입이 아니라 학계 다수의 통설이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검정과정에서 최대한 필자들의 견해를 존중해주되 정부는 꼭 필요한 가이드라인만 제시해주면 된다"고 말했다.
또 이날 당정 협의 후 김희정 새누리당 6정조위원장이 일선 학교의 자율적 교과서 선정을 보장하는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며 "재선정(교학사 교과서 철회) 과정에서 소위 떼법, 떼쓰기로 뒤집는 경우 얼마나 인정할지 검토해야 한다"고 밝힌 것도 교사들의 채택권을 보장해 부실 교과서를 걸러야 한다는 전문가 진단과는 정반대다. 처음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했을 때 교장이나 재단이 압력을 넣었다는 교사의 양심선언과는 반대로 학교장의 권한 강화를 시사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일식 연세대 사학과 교수는 "일선 학교의 채택 과정도 현행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만 제대로 지켜져도 문제 없을 것"이라며 "교사가 1순위로 올린 교과서를 채택하지 않고, 학교장이 교사를 불러다 회유하는 등 입김을 넣어 교사의 양심선언이 나오는 것은 독재정권에서나 벌어질 법한 일"이라고 말했다. 권오현 경상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현재 교사와 학교운영위원회가 추천한 교과서라도 학교장이 거부하고 다른 교과서를 채택할 수 있게 돼 있다"며 "교사의 추천과 학운위의 심사를 통해 선정된 교과서를 반드시 사용하도록 하는 규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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