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반정부 시위대가 13일 수도 방콕의 도시 기능을 마비시키는 '방콕 셧다운' 시위에 돌입했다. 수만 명의 반정부 시위대는 이날 오전부터 방콕 시내 주요 교차로와 주요 거점 20여곳을 폐쇄하고 잉락 친나왓 총리의 퇴진과 내달 2일로 예정된 조기 총선의 연기를 요구했다. 수텝 터억수반 전 부총리가 이끄는 반정부 시위대는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시위를 계속할 방침이어서 시민 불편을 담보로 한 셧다운 시위의 장기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셧다운' 승부수 띄운 반정부 시위대
국민민주개혁위원회(PDRC)를 중심으로 한 시위대는 이날 방콕시내 7곳의 주요 교차로에 바리케이트를 치고 도로를 봉쇄하는 것으로 셧다운 시위를 시작했다. 석 달째 이어지고 있는 소요 사태에도 잉락 총리가 물러나지 않자 도시 기능 마비라는 승부수를 띄운 셈이다. 7곳의 교차로에는 한인 상가가 밀집해 있으며 방콕 시내에서 가장 교통량이 많기로 유명한 아속 사거리도 포함돼 있다. 당국은 이들 교차로의 하루 평균 통행량이 70만대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시위대는 '방콕 셧다운'이라고 적힌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태국 국기를 흔들며 잉락 총리의 퇴진을 요구했다.
이들은 시내 주요 거점 20여 곳에서도 행진과 점거 시위를 벌였다. 특히 주요 정부부처를 에워싸고 전력공급 차단 가능성을 거론하며 업무 중단을 압박했다. 터억수반 전 부총리는 "이번 싸움에서 무승부는 있을 수 없다"며 "잉락이 퇴진하고 총선이 연기될 때까지 시위를 계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위대는 15일을 잉락 총리 퇴진 시한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시위대 측은 시위가 내전으로 번질 경우 시위를 중단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시민 불편을 감안해 공항과 지하철 등 대중 교통은 점거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이날 시위의 여파로 방콕 내 150개 학교가 휴교에 들어갔으며, 시위 현장 인근의 대학들도 수업을 연기했다. 시위 거점 지역에는 병원 12곳과 호텔 28곳, 학교 24곳이 포함돼 있다. 태국 정부는 경비 강화를 위해 경찰 1만명과 군인 8,000명을 방콕 시내에 배치했다. 잉락 총리는 사태 확산을 막기 위해 군경에 방패와 지휘봉을 제외한 무기 사용을 금지했다. 하지만 이날 오전 정부청사 인근 시위대 야영장에서 총격이 발생해 1명이 부상했다.
'친탁신ㆍ반탁신' 뿌리깊은 갈등
이번 사태는 지난해 11월 태국 집권당인 푸어타이당이 부정부패 혐의로 실형을 받은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사면을 추진하면서 비롯됐다. 탁신의 정계 복귀에 반대하는 야권과 그 지지세력은 탁신의 사면 반대와 잉락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석 달째 이어오고 있다. 그 동안 시위대와 군경의 충돌로 모두 8명이 숨졌고 400여명이 다쳤다.
배경에는 탁신을 지지하는 집권세력과 '반탁신' 세력 간의 뿌리 깊은 갈등이 자리잡고 있다. 재벌 출신인 탁신은 2001~2006년 총리 재임 기간 과감한 친서민 정책으로 중산층의 폭넓은 지지를 받았지만 정실인사와 부정부패 등으로 반대파도 적지 않았다.
양측은 2006년 탁신이 군부 쿠데타로 실각한 뒤 수 차례 충돌했다. 2010년에는 탁신 지지자(일명 '빨간 셔츠') 수만 명이 9주간 방콕 중심가를 점거하는 시위를 벌였다. 당시 군경의 진압과정에서 9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에 앞서 2008년 반탁신 세력(일명 '노란 셔츠')은 친탁신 정부에 대항해 일주일간 방콕의 국제공항 두 곳을 폐쇄하며 시위를 벌이는 등 갈등을 빚었다.
이번 사태 역시 쉽사리 봉합되거나 어느 한 쪽의 일방적 승리로 끝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관측이 많다. 반탁신 측이 내달 2일로 예정된 조기 총선 연기를 요구하고 나선 것도 서민층의 지지를 받는 친탁신 세력의 승리가 점쳐지기 때문이다. 반정부 시위대가 잉락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지만 태국 북부와 북동부 지역 주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만큼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군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쿠데타설'이 가라앉지 않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와 관련 정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프라윳 찬 오차 육군참모총장은 지난 11일 "언론이 지나치게 쿠데타 가능성을 언급해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그는 지난해 말 "문은 열려 있지 않지만 닫혀 있지도 않다"며 쿠데타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정치권에서는 "잉락 총리가 셧다운 시위 이후 군에 쿠데타를 요청했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태국에서는 1932년 입헌군주제 도입 이후 모두 18차례의 쿠데타가 일어났을 정도로 군의 정치 개입이 잦았다.
신정훈기자 h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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