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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1월 14일] 교과서는 없다

입력
2014.01.13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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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죽은 시인들'이라는 서클을 만드는 계기가 교과서를 찢자고 권하는 교사에 있다는 영화만큼 감동적인 교육영화가 또 있을까? 그러나 나에게는 찢을 교과서가 없다. 교과서 없이 수업을 하기 때문이다. 대학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할지 모르지만, 초중고생들이나 성인들을 대상으로 수업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떤 주제에 대한 여러 가지 견해를 소개하고 토론하며 비판한 뒤 나의 견해를 덧붙이는 수업이니 하나의 교과서를 사용할 수가 없다. 획일적인 독재자나 권위주의자가 아니라 다양성을 믿는 민주주의자가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유치원부터 대학원까지, 아니 죽을 때까지 단권 교과서로 공부하는 풍토에 민주주의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수업에 불편해 하면서 교과서를 선택해 달라고 하는 학생들도 많고 그것이 나에게도 편하지만 응하지 않는다. 특히 단권 수험용 교과서를 사용하는 수업에 젖은 학생들이 불편해하지만 그런 기계식 암기 중심의 단권 수험 수업은 교육이 아니다.

어떤 과목의 교재로 사용하는 책인 교과서라는 것은 그 과목을 가르치기 위한 재료에 불과한 것이고, 따라서 그것을 반드시 선택할 필요가 없으며, 교과서가 아닌 다른 참고서적도 참고하여 교사가 자유롭게 수업할 수 있다. 물론 교사가 교과서 중 하나를 선택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하도록 강요한다면, 특히 국가가 강요한다면 헌법상 기본적 인권인 교육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될 수 있다. 그 중 최악은 국가가 교과서를 만들어 강요하는 국정 교과서 제도이다. 교과서 검인정에 국가가 직접 개입해도, 교과서 채택에 학교장 등의 권력이 작용해도 위헌이다. 교과서 선택에 교사 외에 교육 관련자들이 참고인 정도로 관여할 수 있다고 해도 교사의 선택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교사에게는 자기가 가르치고 싶은 것을 가르칠 수 있는 자유가 헌법상 기본적 인권으로 보장되어 있다. 국가나 학교장이나 학부모는 물론 학생도 그 인권을 침해할 수 없다.

교학사판 한국사 교과서 채택을 둘러싼 최근의 논쟁을 보면 어떤 주장이나 하나의 교과서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전제에 서 있다. 교과서는 반드시 필요하고, 반드시 하나여야 하며, 반드시 국정이거나 검인정이어야 한다는 전제 말이다. 그런 전제하에서 벌어지는 논쟁의 차이란 보수는 국정, 진보는 검인정이라는 정도다. 보수는 마지못해 국정에서 검인정으로 물러섰지만 자신들의 생각을 반영하는 교과서가 거의 채택되지 못하자 바로 국정이라는 위헌의 칼을 빼들었다. 자기들이 좋아하는 교과서만 가르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바로 독재 교육, 전체주의 교육, 파시즘 교육, 기계식 획일주의 교육이다. 그러나 교과서 검인정 제도가 그러한 교과서 국정 제도의 문제점을 완전히 극복하는 것은 아니다. 전자는 후자보다는 덜 독재적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여전히 국가가 정하는 기준 내에 있는 것이고, 검인정 절차를 통과한 교과서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기 때문에 그 점에서는 여전히 독재적이고 획일적이다.

이는 한국에서 교과서란 것이 어떤 절대적 가치나 권위를 갖는 것으로 믿는 것과 관련된다. 사서오경이니 불경이니 성경이니 하는 절대적 권위를 갖는 경전처럼 교과서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소위 교과서 같은 사람이 칭송되기도 한다. 교과서만 열심히 보면 시험도 출세도 보장된다고 한다. 특히 각종 고시가 그렇다. 그런 획일적이고 기계적인 공부에 젖으면 권위주의자가 되기 쉽다. 하나의 책이 100만 권을 넘는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도 이러한 교과서주의와 관련이 있다. 지식이나 예술의 독재만큼 위험한 독재가 없다. 고전이니 하는 것도 그런 독재의 일종이니 경계할 필요가 있다. 최근 TV나 인터넷 등이 베스트셀러를 조작하는 것도 문제다. 교과서주의는 획일주의다. 다양한 교과서가 필요하다. 아니 교과서는 없어야 한다. 오직 하나의 권위, 독재는 없어야 한다. 교과서를 찢는 교사가 그립다. 그러나 이 땅에서 그런 교사나 교수는 쫓겨날지 모른다.

박홍규 영남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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