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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36.5°/1월 14일] 뉴욕타임스에 비친 창의력 상실시대

입력
2014.01.13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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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몇몇 국내 대형 뮤지컬 제작사들은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 기자의 취재 요청을 받았다. 한국의 뮤지컬 붐이 미국에서도 큰 이슈가 되고 있던 터라 이들은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고, 좋은 기사가 나오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12월 8일자부터 4주에 걸쳐 뉴욕타임스 주말판에 소개된 한국 뮤지컬 특집기사는 물적인 시장확대의 이면에 깔린, 드러내고 싶지 않던 부분을 곱씹어놔 "읽기 불편했다"는 말이 뮤지컬 업계에서 심심치 않게 들린다.

뉴욕타임스 기사 가운데 가장 '아픈' 내용은 '한국의 뮤지컬 시장이 세계 어느 곳과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며, 제작자들은 마치 서부개척시대라도 맞은 듯 앞다퉈 브로드웨이 작품들을 수입한다'(12월 8일자)고 보도한 부분이다. '뉴욕시 전체 규모와 버금가는 300개 이상의 극장을 갖추고 있으면서 최근엔 대형 교회까지 나서 600석짜리 브로드웨이 스타일의 극장을 지었다'며 은근히 우리의 뮤지컬 붐을 비꼰 대목은 은광을 발견했다는 소식에 이성을 잃고 무작정 서부로 달렸던 카우보이들을 떠올리게 한다. '80%가 넘는 뮤지컬이 돈을 벌지 못하는 데도 한국 뮤지컬 제작자들은 이에 굴하지 않는다'는 기자의 코멘트는 해외 유명 브랜드라면 시장 상황에 아랑곳없이 일단 수입하고 보는 우리 유통업계의 병폐를 보는 듯해 부끄러울 정도다.

전용극장이 급증하고, 이를 채우는 콘텐츠들은 우리 관객이 열광하는 브로드웨이 작품 등 '유명 브랜드'들이 대부분이라는 뉴욕타임스의 지적은 이른바 문화강국을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순수 창작 공연작품 융성의 걸림돌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공연계가 가장 바쁜 성수기는 연말이다. "제야의 종이 울리면 더 이상 사람들은 공연을 보려고 지갑을 열지 않는다"는 말은 이 바닥의 금언이다. 실제 초대형 라이선스 뮤지컬들은 하나같이 지난 연말 특수를 노려 11월에 서울 시내 유명극장에서 막을 올렸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적은 자본에 의지해 제작된 창작 뮤지컬들은 이들에 밀려 성수기 동안에는 지방공연을 한 뒤 1년 중 가장 비수기인 1월이 되어서야 서울 '상경' 공연을 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도 저도 아니면 1월에, 그것도 수도권 외곽 극장에서 막을 올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피서객이 다 떠난 해수욕장에서 냉차를 파는 격이다. 어렵게 순수 창작물을 올리는 것보다 무리가 되더라도 자금을 모아 해외 유명작을 들여오는 게 남는 장사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한 창작 뮤지컬 관계자는 "작품을 올리려면 협찬을 잡아야 하는데 홍보 소책자에서 '창작'이란 단어를 빼달라고 요구하는 기업이 많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창작자들의 의욕을 꺾는 분위기는 비단 뮤지컬업계만의 일이 아니다. 한 연극인은 신인 작가의 작품을 마음대로 가위질해서 '장사가 될 수 있는' 작품으로 뒤바꿔버리는 연출자들의 행태에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제목과 작가라는 타이틀만 남겨놓고 몽땅 손질 당해 한동안 극을 만들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유명 예능인과 지상파라는 강력한 도구를 앞세워 음원 시장을 장악해버리는 모 예능프로그램의 '가요제', 표절에 대한 처벌이 사실상 불가능하도록 남겨둬 창작과 반대의 길을 걷도록 유혹하는 현행법 또한 경쟁력 있는 창작물의 탄생을 어렵게 하는 걸림돌이다. 최근 대중음악인들은 거의 유일하게 남아있는 공중파 라이브 음악 무대인 EBS의 '공감'이 공연횟수를 축소할 것이란 방침에 분노하고 있다.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직장인 밴드 교습으로 악착같이 돈을 벌어 창작곡을 만드는 젊은 음악인들의 무대가 줄어드는 데 대한 우려 때문이다.

돈 되는 유명 해외 작품들 때문에 시내 극장 진입마저 어려운 창작뮤지컬 제작자, 표절에 대한 관대함과 좁아지는 채널로 생계 위협마저 받는 인디 음악인들, 가위질당한 작품에 상처받는 연극인들. 이른바 '문화융성'을 앞세운 박근혜 정부가 반드시 돌아봐야 할 이들이다.

양홍주 문화부 차장대우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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