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남부에서는 미일 양군의 사투에 휘말려 주민 다수가 사망했는데, 일본군에 의해서 참호에서 쫓겨나거나 집단자결을 강요당한 주민도 있었다."
2007년 일본의 한 역사교과서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오키나와 주민 학살에 대해 서술한 대목이다. 이에 교과서 검정을 담당하는 교과용도서검정조사심의회는 '오키나와전의 실태에 관해서 오해할 우려가 있는 표현'이라며 삭제를 요구했다. 당시 생존자들이 "일본군의 명령과 강제에 의한 것"이라고 증언했는데도 일본 정부가 자기 입맛대로 교과서 서술에 간섭한 것이다. 문부과학성의 교과서조사관이 교과서 내용을 통제한 결과였다.
교육부가 부활시키기로 한 편수 전담조직에 대해 전문가들이 정부의 과도한 개입 등 부작용이 더 클 것이라고 우려하는 이유는 이 같은 문제를 보여온 일본 검정제도를 모델로 삼은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국사편찬위원회의 심의와는 별도로 전문인력을 두고 교과서 내용과 검정까지 담당하게 해 교과서 질을 담보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는 심의회 심의에 앞서 사전조사를 하는 일본의 조사관과 비슷하다. 현재 문부성 내 조사관은 50여명이 있고, 이중 일본사 담당은 3명이다.
오키나와 주민 학살 서술 삭제에서 보듯 일본은 사실상 정부가 내용을 통제하는 '반쪽 검정', '사실상 국정'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러한 논란의 중심에 조사관이 있다. 권오현 경상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일본도 우리처럼 심의회가 있지만 이는 형식적 절차가 되어버렸고, 검정에 관한 실질적 권한은 조사관이 행사하고 있다"며 "조사관들이 사전에 교과서 내용을 일일이 체크해 수정을 요구하고, 고치지 않으면 검정을 통과시키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키나와 주민 학살 서술 삭제나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서술을 넣도록 한 것도 조사관의 검정의견이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심의회의 심의가 조사관의 의견에 좌지우지되거나 심지어 이들이 심의에 구체적으로 관여하고 있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조사관 중 우익단체인 '새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후학이 있는 등 공정성 문제를 낳으면서 오히려 이념 논쟁을 부추겼다.
전문가들은 교육부 내 검정ㆍ편수조직이 이 같은 전철을 밟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권 교수는 "그 역할이 교과서 검정 절차를 조정하는 정도에 국한된다면 모를까 검정의견을 붙인다면 일본처럼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며 "교과서 자율화 취지에 따라 없앤 편수국을 다시 부활시킨다는 것은 국가가 교육 내용에 대한 간섭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봐야한다"고 말했다. 김한종 한국교원대 교수는 "5~10명에 불과한 교과서 집필자들이 자료 조사까지 해서 교과서 한 권을 쓰기 힘들기 때문에 이런 기초 업무를 돕는 인력은 필요하지만 교육과정이나 집필기준, 검정 업무를 하게 되면 정부의 입김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며 "정부는 큰 방향만 정해놓고 나머지는 학계나 연구자들에게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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