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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구 막혀 관객 패닉에도… 극장 찔끔 과태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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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구 막혀 관객 패닉에도… 극장 찔끔 과태료

입력
2014.01.12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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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1일 오후 10시쯤 서울 상계동의 멀티플렉스 체인 L영화관. 10층 9번 상영관에서 상영 중인 영화 '변호인'이 거의 끝나갈 무렵 매캐한 냄새가 실내를 가득 채웠다. 누군가 "불이야!" 하고 외치자 관객 200여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스크린 양 옆의 비상구로 뛰어 내려갔다.

하지만 오른쪽 비상구는 아무리 밀고 당겨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급한 순간 '생명로'가 열리지 않자 관객들은 비명을 지르며 다시 왼쪽 출입구로 몰려갔다. 어둠 속에서 벌어진 아비규환의 상황은 5분쯤 뒤 도착한 소방관들이 화재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진정됐다.

12일 서울 노원소방서 등에 따르면 이날 소동은 영화관 측에서 고장 난 비상구를 방치한 채 영화를 상영해 벌어진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지만 영화관장에게 과태료 50만원을 부과하는 데 그쳐 논란이 일고 있다.

조사 결과 당시 영화관에 퍼졌던 매캐한 냄새는 공조기에 먼지 등 이물질이 들어가 타면서 발생했다. 다행히 큰 사고는 피했지만 열리지 않는 비상구 앞에서 공포에 떨어야 했던 관객 60여명은 당시 1시간 넘게 영화관에 남아 상황 설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A씨는 "만약 정말 불이 났었다면 모두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더구나 영화관 측은 비상구 잠금장치가 고장 난 사실을 알고도 영화 상영을 강행한 것으로 드러나 비난을 사고 있다. 영화관 관계자는 "고장을 알고 있었지만 영화 스케줄 상 상영 중지 등의 조치를 하기는 어려웠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화재 소동이 끝난 뒤에도 관객들의 항의에 제때 대응하지 못한 것에 대해 "당시 관장이 외부에 있어 필요한 조치가 늦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안전 관리와 교육을 철저히 하겠다"고 밝혔다.

영화관이나 학원 등 많은 사람이 몰리는 다중이용업소의 소방시설 관리를 건물주나 시설주에게만 맡기는 제도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현행법상 다중이용업소 소방시설 정기점검은 1년에 두 차례 민간 소방시설관리업체의 점검을 받고 결과서를 제출하면 소방당국이 검토한 뒤 임의조사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비상구 소동을 빚은 L영화관의 경우 지난해 9월 서울시소방재난안전본부의 '소방안전관리 우수업소'로 선정되기도 했다.

소방시설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도 처벌 수위가 낮아 피난시설이나 방화시설 폐쇄로 적발되면 1회 50만원, 2회 100만원, 3회 이상은 적발 시마다 2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데 그친다. 비상벨 등 안전시설 미설치에 대한 과태료도 고작 200만원이다. 막대한 매출을 올리는 다중이용업소에는 '껌값' 수준이어서 철저한 소방 및 안전 관리를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번에도 소방서 측이 과태료 50만원을 부과하고 끝내자 일부 관객들은 "우리 목숨 값이 50만원밖에 안되냐"며 소방당국에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노원소방서 관계자는 "관객들 심정은 이해하지만, 관련법에 따라 가능한 조치를 모두 취했다"고 밝혔다.

제진주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자칫하면 대형 인명사고가 날 수 있는 건물의 안전 관리를 자율점검에만 맡기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소방서의 다중이용업소 소방시설 정기 점검을 의무화하고 경각심을 높이는 차원에서 처벌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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