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이 창사 이래 최대위기에 봉착했다. 잇따른 임직원 비리로, 세계 최대 조선업체의 명성에 치명적 흠이 생긴 것이다. '배는 1류, 도덕성은 3류'란 비아냥 속에 수주차질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우선 원자력발전소 납품비리. 지난 10일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수출용 원전의 부품납품 청탁을 위해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한국수력원자력 측에 금품을 준 혐의로 현대중공업 전ㆍ현직 임직원들에 대해 무더기 실형을 선고했다. 확인된 뇌물액수만 17억원에 달한다.
또 울산지검은 납품비리 수사결과 발표를 통해 이 회사 임직원들이 협력업체로부터 총 36억원 상당의 금품을 받았다고 밝혔다. 차명계좌를 이용해 무려 15억원을 챙긴 차장급 직원도 있었다. 을(乙)의 위치에서 뇌물을 준 경우(원전비리)도 있고, 갑(甲)의 지위를 이용해 뇌물을 받은 경우(협력업체 비리)도 있지만, 어떤 경우든 세계 최대ㆍ최고의 조선사에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비위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업계에선 "그 동안 숨겨져 왔던 고질적 관행들로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이란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비리가 수주활동에도 큰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선진국 선주들은 부도덕 기업이미지가 있는 곳엔 발주를 하지 않는다. 심각할 경우 계약해지 사유도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은 이에 따라 11일 울산 본사에서 주요 계열사 CEO와 고위임원 150여명이 긴급 경영전략세미나를 갖고 준법경영 실천을 결의했다. 이날 세미나에는 이재성 현대중공업 회장을 비롯해 최원길 현대미포조선 사장, 권오갑 현대오일뱅크 사장, 서태환 하이투자증권 사장, 하경진 현대삼호중공업 부사장, 하명호 현대종합상사 부사장 등 주요 계열사 CEO들이 모두 참석했다.
이들 경영진은 금품ㆍ향응수수, 청탁 및 부당압력 등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한 뒤 윤리경영 실천서약서에 서명했다. 이 회장은 "뼈를 깎는 쇄신으로 어떤 비리도 발붙일 수 없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며 "부정과 비리에 대해서는 일벌백계 함으로써 엄정한 기강을 세우겠다"고 말했다.
또 앞으로 준법경영 정착을 위해 '부패 방지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을 추진하기로 했다. 예방ㆍ방지ㆍ대응으로 구성된 이 프로그램은 국내외 법령, 윤리 의식ㆍ행동 강령에 대한 임직원 교육 시행, 내부 통제 시스템 정비, 정기적 모니터링 강화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업계에선 이 같은 자정 결의만으론 비리근절도, 신뢰회복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대형 조선사의 경우 수백~수천개 협력업체가 납품경쟁을 벌이고 있어, 구조적으로 금품수수 유혹에 상시 노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경영진 문책 등 보다 강력한 조치를 보여주지 않는 한 해외 바이어들도, 국민들도 쉽게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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