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신고로 출동한 경찰관은 피해자가 얼마나 심각하게 폭행을 당했는지 보다는 '가해자를 처벌해달라'는 피해자의 고소 의지를 사건 처리 때 더 중요하게 고려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설문에 응한 경찰관들은 가정 폭력을 '경찰 개입이 불필요한 경미한 사안'(54.1%)이라거나 '가정 내에서 해결하는 게 좋다'(60.5%)고 인식하고 있어 심각한 폭력 상황을 접하고도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12일 홍태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외래교수의 '부부폭력 사건에 대한 경찰관 인식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지난해 7월 대구지역 지구대와 파출소 경찰관 220명을 대상으로 부부폭력 사건 처리 시 고려하는 13가지 요인에 대해 설문 조사한 결과 '피해자의 처벌 의지'가 4점 척도 평가에서 3.50으로 가장 높았다.
이어 흉기 사용 여부(3.49), 피해자의 신체적 외상(3.23), 가정폭력 빈도(3.20), 피해자의 심리적 불안 상태(3.19), 가해자의 가정폭력 입건 전력(3.0), 현장의 물리적 파손 정도(2.95) 등이 부부폭력 사건 처리 시 고려 요인으로 조사됐다.
설문에 응한 경찰관 10명 중 8명은 "부부폭력은 처리과정이 복잡하다"(82.3%), "다른 사건에 비해 다루기 어렵다"(80%)고 답해 가정폭력 사건을 처리하기 꺼려하는 경향을 드러냈다.
경찰이 사건현장에서 가해자의 접근금지나 퇴거 등을 명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강제권인 '긴급임시조치권'에 대해서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절차가 복잡해 망설여진다"는 응답이 91명(41.4%)으로 가장 많았다. "효과적으로 생각해 상황이 오면 발동하겠다"는 답변이 87명(39.5%)으로 뒤를 이었지만 "비효율적인 불필요한 제도"(17명)라거나 "잘 모르겠다"(20명)는 등 부정적인 응답도 적지 않았다.
긴급임시조치권을 사용하면 '긴급임시조치결정서'를 작성해 지체 없이 검사에게 제출해야 하고, 검사는 48시간 이내에 법원에 신청해야 한다. 홍 교수는 이런 후속절차가 경찰관들이 권한 사용을 귀찮은 일로 치부하게 만들 가능성을 높인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경찰이 피해자의 처벌의지(고소의사)에 좌우되지 않고 강한 처분을 내릴 수 있도록 법적 보완장치를 만들어야 눈치를 덜 보고 가정 폭력 사건을 공식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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