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의원실 모 보좌관은 지난해 6월 임시국회만 떠올리면 지금도 분통이 터진다. 앞서 여야 지도부는 83개 민생법안을 선정, 6월 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하겠다고 공언했지만, 환노위에서는 여야가 법안 상정 순서를 둘러싼 샅바싸움으로 허송세월을 보내면서 단 한 건의 법안도 처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새누리당은 남녀고용평등법 등 정부입법부터, 민주당은 정리해고요건 강화 등 서로 입맛에 맞는 법안부터 우선 심사하자고 맞서면서 당시 법안소위에 계류돼 있던 107개 안건은 테이블에도 오르지 못했다. 그 중 다수는 여야 공히 대선 공약으로 내걸 만큼 이견이 없어 일사천리로 처리될 수 있는 비쟁점 법안들이었다. 환노위 관계자는 "기간제근로자 보호 법안 등이 지난해 6월에 통과됐더라면 바로 혜택이 적용될 수 있었는데 이러니 국회가 욕을 먹는 것"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에 대한 차별행위에 대한 처벌 강화를 내용으로 하는 이 법안은 2012년 5월 발의된 이후 1년 8개월이 넘었지만 여전히 환노위 캐비닛에 잠자고 있다.
이처럼 민생 입법이 우선 처리 순위에서 밀리고 결국 내팽개쳐지는 까닭은 결국 여야의 정치싸움 탓이다. 여야가 민생을 부르짖지만, 정국 주도권을 잡기 위해 정쟁을 부추기는 이슈에만 매몰되다 보니 정작 고질적인 사회문제 대책 하나 제대로 생산해내지 못하고 무능, 무책임 국회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특히 여야가 첨예하게 맞붙는 사안의 경우 주고받기 등을 통해 법안을 관철시키지만 오히려 여야 이견이 거의 없는 법안들은 이런 '정치적 딜'에서조차 소외돼 아예 논의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 치매 관리법 개정안을 낸 새누리당 박대출 의원실 관계자는 "복지위 자체가 기초연금 등으로 팽팽하게 싸우다 보니 우선순위에서 밀려 언제 처리될 지 모르겠다"고 한탄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지난 2010년 '장기미처리법률안의 해결방안'보고서를 내 각 상임위원장이 주기적으로 장기미처리법률안 현황을 파악해 국회의장에게 보고하는 절차를 마련하는 등 법안 사장의 문제점과 관리 필요성을 지적했지만 정치권은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의원들의 보여주기식의 법안도 신속한 민생입법을 가로막는 요인 중 하나다. 급조된 법안 발의가 남발되면서 심사부담만 가중시키고 신속 처리돼야 할 법안까지 지연되는 것이다.김삼수 경실련 정치입법팀장은 "특정 사안에 대한 여론이 들끓으면 의원들이 부랴부랴 법안을 쏟아내는 데 부실 법안으로 입법 효율성을 떨어트리고 있다"며 "법안 발의 과정에서부터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의원이 민심의 요구를 반영해 이를 얼마나 제때 입법화시켰는지 평가하고 이를 다음 선거 때 투표로 연결시키는 유권자들의 의식개선이야말로 민생입법 활성화의 가장 큰 전제조건"이라고 강조했다.
강윤주기자 kkang@hk.co.kr
조아름기자 archo1206@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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