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경기 성남시 경기남부노인보호전문기관(이하 노인보호기관)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거동이 불편한 70대 노인이 수개월째 방치돼 있다는 내용이었다.
노인보호기관 소속 사회복지사들이 곧바로 달려간 현장은 충격적이었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김모(당시 73세) 할아버지는 20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누워만 있었고 대소변을 처리하지 못해 집안에는 악취가 진동했다. 병원 검사 결과 김 할아버지는 최소 6개월 동안 정상적인 식사를 하지 못했고, 심각한 영양섭취 부족 상태라는 진단을 받았다.
노인보호기관은 김 할아버지의 가족들이 '방임 학대'한 것으로 판단하고 가족들을 찾았지만 아들 2명 모두 연락이 닿지 않았다. 가족들의 정상적인 보살핌을 기대할 수 없게 되자 사회복지사들은 김 할아버지를 기초수급대상자로 지정해달라고 관련 기관들에 호소했다. 간신히 김 할아버지는 수급대상자로 지정됐으나 바로 다음날 세상을 떠났다.
2004년 경기도에서 처음 문을 연 경기남부노인보호전문기관은 (재)성모성심수도회(관장 김수은 성삼의 베로니카 수녀)에 위탁돼 수원과 성남, 양평 등 11개 시ㆍ군의 학대받는 노인들을 전문적으로 돕고 있다. 노인 학대 상담과 현장 조사 뿐만 아니라 학대 예방교육, 피해 노인들의 정서 지원, 지역사회 노인 보호 자원 개발 등 다양한 노인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경기남부권역의 노인학대 관련 신고는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노인보호기관 설립 초기인 2005년에는 노인학대 신고 접수가 324건이었으나 2012년에는 659건으로 7년 사이 두배 가까이 늘었다. 2010년 부천에 경기서부노인보호전문기관이 생기면서 관할 지역이 절반 가량 줄어든 것을 감안하면 노인학대 신고는 4배 가량 늘어난 셈이다.
신고는 매년 크게 늘고 있지만 노인보호기관의 예산은 한정돼 있어 독지가들의 후원금으로 버텨나가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900만원 가량 후원 받았지만 학대 받은 노인들의 병원비와 예방 교육비 등으로 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세상을 떠난 김 할아버지의 병원비 중 150여만원은 아직 미납 상태다. 김 할아버지 치료를 맡았던 용인 노블효 병원측이 미납 병원비를 받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 동안 여러 차례 신세를 졌던 터라 노인보호기관측은 병원비를 '미납 상태'로 남겨뒀다.
하루 24시간, 365일 운영되는 노인보호기관의 상담업무를 담당하는 사회복지사들은 업무량도 많고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심하다. 그럼에도 사회복지사들은 "격무에 시달리는 것보다 넉넉하지 못한 예산 때문에 노인들의 병원비와 교육비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노인보호전문기관 권미해 실장은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의 문제는 자신들이 직접 겪어 보았기 때문에 공감 하고 있지만 노인 문제는 아직 겪어보지 못해서 그 심각성을 모른다"면서 "주변에 학대 받거나 학대가 의심되는 노인들이 있다면 언제라도 신고 전화(1577-1389)를 해달라"고 당부했다.
●후원=자동응답전화(ARS)060-700-1111, 우리은행 1006-587-121212(예금주 사회복지법인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성남=김기중기자 k2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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