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앞으로 다가온 일본 도쿄 지사 선거에서 '탈원전'이 최대 쟁점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출마 의사를 밝히며 당선 유력 후보 대열에 합류한 호소카와 모리히로(76) 전 총리가 '원전 반대'를 간판 선거구호로 내걸었기 때문이다. 역시 '탈원전'을 외치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와 연대 가능성도 있다. 도쿄 지사 선거에서 호소카와처럼 총리를 지낸 거물급 정치인이 나서는 경우는 처음이다. 정치 성향이 다른 고이즈미와 연대도 이색적이어서 도쿄 지사 선거가 어느 때보다 화제를 뿌리고 있다.
탈원전 정책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 일본 정치상황 등을 비판하며 "낙선해도 좋으니 입후보하겠다"며 주변에 출마 의사를 표시한 호소카와 전 총리는 14일 고이즈미 전 총리를 만나 연대 의사를 타진한다고 일본 언론들이 보도했다. 호소카와 전 총리는 그 뒤 바로 출마 기자회견을 열 계획이다.
일본 규슈 중부 구마모토 지역의 영집안 후손으로 자민당 의원으로 정치인생을 시작한 호소카와는 1992년 일본신당 창당 이듬해 사회당, 공명당 연립정권으로 자민당 일당 독주에 전후 처음으로 제동을 걸었던 인물이다. 재임기간은 7개월 정도로 길지 않았지만 그 기간 중 8월15일 전몰자추도식에 참석해 일본 총리로는 처음 "일본의 아시아에 대한 가해 책임"이라는 문구가 들어간 추도사를 낭독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경주 정상회담에서도 "식민지 지배" "침략전쟁" 등의 용어를 써가며 일제 침략을 사죄했다. 정치에서 물러난 뒤 취미인 도예를 즐기려고 때때로 경남 산청의 한국인 지인 곁에 머물기도 하는 지한파 인사다. 한국 비하 발언으로 악명 높은 이시하라 신타로 전 지사와 대조적이다.
이번 도쿄 지사 선거는 당초 집권 자민당과 민주당 일부 의원들의 지지를 배경으로 무소속 출마의사를 밝힌 마스조에 요이치 전 후생노동성 장관이 유력후보로 꼽혔다. 후보 인물난에 전전긍긍하던 최대 야당 민주당의 근심을 일거에 해결해 준 것이 호소카와 전 총리의 출마 결심이다.
민주당쪽에서는 당장 환영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민주당의 막후 실력자였다 탈당한 오자와 이치로 생활의당 대표는 당의 공식 추천후보로 삼지는 않겠지만 "정치자금 지원" 등 호소카와를 응원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일본 언론들이 전했다. 오자와 대표 역시 '탈원전'이 지론이다. 역시 '탈원전' 목소리를 높여온 민주당의 간 나오토 전 총리도 자신의 블로그에 "원전제로를 바라는 도쿄도민은 당선가능한 호소카와씨 응원에 집중해야 한다"며 벌써 지원사격에 나섰다.
선거전의 흐름과 당선 여부는 고이즈미 전 총리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호소카와 캠프를 돕고 나서느냐에 달려 있다. 호소카와 전 총리가 고이즈미를 만난 뒤 출마를 공표하겠다는 것도 그의 지원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한 뒤 출마를 최종 확정하겠다는 뜻이 담겼다. 고이즈미는 지난해부터 자신의 정치적 제자뻘인 현 아베 총리를 비판하며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 교훈을 얻어 일본은 '탈원전'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역대 총리 중 가장 높은 수준의 지지율로 장기집권했던 고이즈미 전 총리가 가두연설이나 언론에 나와 호소카와를 지원할 경우 호소카와의 당선 가능성은 상당히 높아진다. 이 경우 이번 선거는 도쿄 지사를 뽑고 마는 것이 아니라 아베 독주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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