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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1월 13일] 양말공장의 불길

입력
2014.01.12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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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났다. 자주 지나다니는 골목의 3층 건물이었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시커먼 연기가 솟구쳤고 곧이어 흰 연기와 유독가스가 일대를 덮었다. 소방차가 속속 도착했고 방독면을 쓴 대원들이 안팎으로 신속히 진화작업에 나섰지만 2시간이 다 되어가도록 불길은 완전히 잡히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으로 옥상에 대피해 있던 사람들이 구조요원의 도움을 받아 하나둘 건물을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오가는 말에 귀를 세워보니 난로가 넘어져 무슨 인화물질에 불이 옮겨 붙었다는 것 같았다. 1층은 양말공장이었다. 재봉용 색실들과 납품용으로 묶어 놓은 양말뭉치들이 시커멓게 뚫린 내부에서 바깥쪽으로 내장처럼 쏟아져 나와 있었다. 잔해에 섞인 그 알록달록한 물건들이 생경하게 도드라졌다. 언젠가 이 양말공장의 온전한 내부를 엿본 적이 있다. 후덥지근한 여름밤이었다. 반쯤 열린 문으로 불빛이 새어나왔다. 어둡고 조용한 주택가 뒷골목의 유일한 불빛이었다. 전봇대 옆에서 나는 몰래 안쪽을 기웃거렸다. 발바닥 모형의 심이 세워진 소형 컨베이어 벨트가 한켠에 자리잡고 있었고, 몇몇의 여자들이 어수선한 바닥에서 나직이 이야기를 나누며 양말을 포장하고 있었다. 몹시 지쳐 보였다. 약간은 화기애애하게 보였다. 아무려나 일을 하기엔 너무 늦은 시각이었다. 이젠 그 열악한 일터마저 폐허가 되었다. 공기도 날씨도 이렇게 맵고 사나울 수가 없었다.

신해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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