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자옥) 선생님, 이게 치즈 맛이에요." "이게 감자에다가 치즈를 넣은 거야?"
"(윤여정) 선생님, 이거 진짜 많이 드신 거 같아요. 이번 여행 때."
음식 광고가 아니다. 여배우들의 여행을 콘셉트로 한달 반 동안 방영됐던 tvN '꽃보다 누나'의 마지막 여정 속 대화들이다.
배우 윤여정과 김자옥, 김희애, 이미연, 이승기는 크로아티아에서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하며 열흘간의 여행을 마무리하는 아쉬움을 달랬다. 김희애가 재래시장에서 장을 봐온 생선과 이승기가 솜씨를 발휘한 떡볶이 등으로 한 상 차려진 만찬. 그런데 이 자리에 난데없이 한 제과업체의 감자칩이 등장했다. 여배우들은 한 움큼씩 집어 입으로 가져가고 이승기는 감자에 치즈를 넣어 풍미가 다르다며 맛 평가를 이어갔다. 여행의 마지막이라는 서운함을 느끼려는 순간 불쑥 끼어든 이들 대화는 결국 '꽃보다 누나'를 간접광고의 장으로 전락시켰다.
'꽃보다 누나'가 비슷한 행태를 보인 것이 처음은 아니다. 이승기와 김자옥, 김희애가 크로아티아에 도착, 야외 카페에서 티타임을 갖는 장면에선 이 제과업체가 만든 브라우니가 튀어나온다. 아름다운 크로아티아의 따뜻한 햇살 아래 커피를 즐기던 이들은 갑자기 디저트를 찾았다. 이때 이승기가 기다렸다는 듯 "커피랑 먹으면 맛있을 거 같아서 갖고 왔다"며 가방에서 브라우니를 꺼낸다. "진짜 맛있긴 해요. 커피랑 먹으니까" "촉촉하고 부드러워요" "부드럽네요" 등 이승기는 과자 홍보에 여념이 없다. 제작진은 친절하게 자막까지 넣으며 홍보를 돕는다. 이승기가 한 입 베어 물고 미소짓던 모습이 광고의 한 장면 같다.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영상이 아니라 억지로 설정을 끼워 넣은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왜 일까. 인터넷의 한 블로거는 "'꽃보다 누나'를 본방 사수하려고 퇴근할 때 뛰어서 집에 오는데 매번 간접광고에 농락당하는 기분"이라며 "설정을 하려면 티 안 나게 하든가…"라며 불편함을 표현했다. 이승기는 이 제과업체의 광고 모델이다.
이 제품뿐이 아니다. 이승기가 입고, 신고, 먹는 것 모두가 간접광고가 됐다. 아웃도어, 패션, 의약, 제과 등 많은 브랜드가 이 프로그램의 협찬사로 나서면서 이승기는 걸어 다니는 광고판이 됐다. '꽃보다 할배' 때부터 대놓고 보여주던 비타민과 물 브랜드는 이번에도 화면에 잡혔다.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방송계에는 "스타 작가도 피해갈 수 없는 게 간접광고"라는 말이 있다. 작년 초 노희경 작가가 집필한 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도 간접광고 논란에 휘말렸다. 드라마에 유독 자동차와 커피숍 신이 많았고 휴대폰이 자주 등장했다. 현재 방영되고 있는 김수현 작가의 '세 번 결혼하는 여자'(SBS)와 문영남 작가의 '왕가네 식구들'(KBS)도 간접광고가 한창이다.
11일 방영된 '세 번 결혼하는 여자'에서는 한 중견 가전업체의 로봇청소기가 업체명과 함께 전파를 탔다. 사장인 준구(하석진)가 로봇청소기의 연구팀을 찾아가 개발을 독려하는 장면이었다. 이 업체는 '세 번 결혼하는 여자'의 제작을 지원하고 있다. 현수(엄지원)가 소개팅을 하고 태원(송창의)과 채린(손여은)이 만나고 은수(이지아)와 보살여사(강부자)가 식사를 하는 장면은 매번 같은 브랜드의 레스토랑에서 촬영이 이뤄진다. 심지어 업소 이름이 새겨진 패널까지 화면을 채운다.
'왕가네 식구들'에서도 의류ㆍ화장품ㆍ커피숍 브랜드가 여과 없이 등장한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심의 제재한 126건 중 40건이 간접광고 때문에 제재를 받았다.
방송업계의 한 관계자는 "협찬사가 드라마의 기획단계에서부터 목소리를 높이는 경우가 많다"며 "관찰 예능의 폭발적인 증가가 광고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꿨을 정도"라고 말했다.
강은영기자 kis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