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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머리 소녀를 사랑한 소녀, 특별하고 아름답고 절절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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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머리 소녀를 사랑한 소녀, 특별하고 아름답고 절절한…

입력
2014.01.12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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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다. 두 청춘이 한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다. 열애 앞에 장애는 없다. 첫 눈에 뜨거워진 두 사람은 곧 몸을 섞고 한 지붕 아래 살게 된다. 사회적으로 잘나가는 상대를 의심하던 한 쪽이 외로움에 시달리다 불장난을 저지른다. 절교가 이어지고 회한과 미련이 두 사람에게 밀려온다.

언제, 어디서든 만날 수 있는 연애담이다. 세인의 눈길을 끌만한 이야기는 아니다. 남녀가 아닌 '여여(女女)'의 사랑이라는 게 좀 특이하다고 할까. 여자끼리의 파격적인 정사 장면이 등장하나 그것이 이 영화의 모든 것을 대변한다 할 순 없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에서 뻗어 나온 이야기의 줄기는 앙상하다. 영화나 소설에서 무한 반복됐던, 만나고 헤어지고 가슴 아파하는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런데 이 영화, 뻔하지 않다. 매우 특별하고 무척이나 아름답다. 2013년이 빚어낸 최고의 사랑영화다. 갖은 형용으로 이 영화를 상찬해도 과하지 않다.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수작이다.

고교생 아델(아델 엑사르코풀로스)의 일상으로 영화는 시작을 알린다. 아침 등굣길 허둥지둥 집을 나서다 눈 앞에서 버스를 놓치고, 친구들과 야한 농담을 주고 받고, 또래 남자를 힐끗 바라보고, 스파게티를 정신 없이 먹어 치우는 아델은 영락없는 10대 소녀다. 그런 그에게 삶을 뒤흔들 순간이 찾아온다. 엷은 바람이 불고 오렌지 빛깔 햇살이 흩어지던 어느 날 그는 파랗게 머리를 염색한 대학 미술학도 엠마(레아 세이두)와 스친다. 남학생과 잠자리를 가진 뒤 "내가 가짜 같아"라고 느꼈던 아델은 엠마를 잠깐 본 것만으로도 자신의 성정체성을 깨닫는다. 이후 멈칫하며 다가서던 아델과 엠마는 서로의 몸을 탐닉하며 일생의 사랑을 나눈다.

프랑스 원제 '아델의 이야기 1부와 2부'가 말하듯 영화는 둘로 나뉜다. 아델과 엠마의 격정적인 사랑이 앞부분을 장식한다면 후반부는 징글징글한 사랑이 남긴 숙취를 좇는다.

영화의 전반부는 파릇파릇하다. 나무줄기에서 막 돋아난 새순 같은 삶의 에너지가 스크린 곳곳에 넘친다. 카메라는 사람들의 작은 숨결과 산란하는 빛의 입자를 포착하며 사랑에 설레고 환호하고 실망하는 인물들의 격한 감정을 전한다. 자유분방하게 춤추며 노래하며 반정부 시위를 하는 고교생들의 청순한 모습, 아델과 엠마가 동성애자 전용 술집에서 우연히 재회하는 장면, 햇빛 부서지는 공원에서 두 사람이 농밀한 속내를 주고 받는 모습 등은 싱그러운 청춘의 사랑을 압축한다.

영화의 뒷부분은 사랑의 회한을 그린다. 온몸의 세포가 발열하던 열정의 시기가 지나고 서로 다른 출신 배경과 거기에서 비롯된 오해가 사랑을 좀먹는 모습을 세묘한다. 사랑이라는 본질보다 생활이라는 실존이 결국 아델과 엠마를 갈라놓는 과정은 쓸쓸하나 현실적이다(두 사람은 사랑에 빠져들 때 실존주의에 대한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아델과 엠마의 정사 장면은 오래도록 회자될 것이다. '헉' 소리가 날 정도로 사실적인데 수치심을 안기기는커녕 보석처럼 빛난다. 보수적인 한국에서도 무삭제로 개봉할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압델라티프 케시시 감독은 "이 장면이 조각처럼 만들어지기를 원해" 10일 동안 반복적으로 촬영하며 정성을 쏟았다고 한다.

지난해 제66회 칸국제영화제는 이 영화와 두 여배우에게 대상(황금종려상)을 안겼다. 칸영화제가 배우에게까지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기는 이 영화가 처음이다.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이었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심사위원들은 케시시 감독과 엑사르코풀로스, 세이두 세 예술가의 빼어남에 주목했다"고 밝혔다. 관객 대부분도 칸 심사위원단의 의견에 동의할 것이다.

'생선 쿠스쿠스'(2007)와 '블랙 비너스'(2010)로 국내 관객들에게 알려진 튀니지계 프랑스 감독 케시시의 다섯 번째 장편영화. 프랑스 만화가 쥘리 마로의 그래픽 노블 를 바탕으로 했다. 16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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