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령이 50년 넘는 나무는 함부로 베지 마라”
단골의 거절할 수 없는 부탁에 지방출장을 떠났다. 조카가 몇 달 전부터 시름시름 앓더니 지금은 정신까지 놓아 오늘내일 한다는 것이다. 무속에 조예가 상당히 깊은 단골은 이번 일을 부탁하면서 분명히 귀신으로 인한 탈 같은데 원인을 모르겠다며 내 호기심을 자극해 출장길에 올랐다.
그는 벌초 차량으로 고속도로가 막히자 미안했던지 우스갯소리도 하고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쏟아냈다. 그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상문살(문상 다녀온 후 동티가 나서 아픈 것)’이 아니라는 분석이다. 조카가 어려서 1년 동안 문상을 간 적이 없어 상문살이 아니라는 일리 있는 주장을 했다.
귀신으로 인한 탈 중에서 가장 흔한 것이 상문살인데 그것이 아니면 원인을 뭘까? 이러한 궁금증은 환자를 보는 순간 하나씩 풀렸다. 송장과 다름없는 조카가 숨을 헐떡이며 가슴을 누르는 나무를 밀쳐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집이나 산소 주변의 나무를 건드린 적이 있습니까?”
“뒤뜰의 감나무가 지붕을 덮칠 것 같아 베었습니다.”
내 질문에 무슨 감이 왔는지 조카의 어머니는 짧게 대답하고 나를 뒤뜰로 안내했다. 꽤나 넓은 뒤뜰엔 족히 한 아름이 될 고목이 잘린 그루터기가 보였다. 목신(木神)이 있을 수령인 고목은 함부로 베면 뒤탈이 잘 생긴다. 장군님께 청문하니 역시 나무로 인한 동티다.
예부터 수령이 50년 넘는 나무는 사람과 똑같이 대접했다. 이런 거목을 옮길 땐 며칠 전에 부적을 붙여서 목신이 다른 곳으로 이사할 여유를 주었고, 부득이 베어야 할 땐 현장에서 고사를 지내 뒤탈을 방지했다.
물론 고목이라고 다 목신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집이나 산소 주변의 고목은 상대적으로 그럴 가능성 많다. 집이나 산소 주변의 큰 나무를 함부로 베지 않는 것도 혹시나 하는 동티 때문이다. 꺼림칙한 일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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