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인사이동으로 보직이 바뀐 박모 부장은 여기저기서 축하 화분 10여 개를 받았다. 대부분이 초록색 잎에 노란 줄무늬가 들어간 동양란이었다. 두어 개쯤 자리 주변에 남기고 나머지는 직원들에게 나눠줬지만 꽃 한 번 피워내기 힘들 거라는 걸 안다.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다. 받는 순간은 기쁘지만 돌아서면 골칫거리라고, 말라 죽기라도 하면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고, 그는 말했다. 그래서 어떤 기업들은 축하 화분을 아예 사절하는 곳도 있다. 사내 경매에 붙이기도 하고, 쌀을 대신 받아 기부하기도 한다.
난초는 그래도 한 철은 버티지만 장례ㆍ결혼식장 화환들의 운명은 더 서럽다. 절정의 아름다움은 잘 해야 2,3일, 배달되자마자 폐기장으로 밀려나 모가지가 꺾이거나 야만스러운 스프레이 세례를 받는 꽃들도 적지 않다. 난초든 화환이든, 주인공은 보낸 사람의 이름이 적힌 리본이고, 꽃은 인맥의 리본을 돋보이게 하는 들러리이기 십상이다. 그렇게 경조사용으로 소비되는 꽃이 2012년 기준 한국의 전체 꽃 소비량의 85%를 차지한다. 행사용은 6.2%, 가정용은 4.8%에 그친다.
그처럼 일상에서 꽃이 근사한 대접을 받는 일도 드물다. 인터넷 취업사이트 잡코리아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지난 크리스마스에 직장인 남녀가 가장 받기 싫은 선물로 꽃다발을 꼽았다. 최소 3만~4만원씩 하는 꽃다발은 평상시엔 비싸서 선뜻 손이 가지 않고, 특별한 날에는 뭔가 모자란 듯 느껴지기 때문이다. 2005년 1조 원이던 꽃 내수시장 규모는 2012년엔 7,560억이 됐고, 연간 1인당 꽃 소비액은 2005년 2만870원에서 2012년 1만4,835원으로 줄었다. 노르웨이는 16만원, 일본은 10만원이었다. 대한민국 국민은 꽃의 결핍 속에 살다가 한 해의 며칠 드물게 기쁘거나 슬픈 날 꽃에 치이고 파묻히기를 반복한다.
물론 식물을 돌보는 일은 수고롭다. 제 때 물과 양분을 공급해야 하고, 온ㆍ습도와 일조량을 유지해줘야 한다. 그런 수고의 보상처럼 새 잎이나 꽃망울이 돋는 것을 보며 사람은 식물에 애착을 키우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기도 한다. 식물이 선물하는 재생과 치유의 기적이다. 쌍용차 해고노동자 가족 보금자리인 '와락'에서 꽃꽂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서울동부범죄피해자지원센터가 꽃집을 열어 그 그 수익금으로 범죄 피해자를 지원하는 것도 그런 의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설치된 대만작가 리 밍웨이의 '움직이는 정원'은 9m 길이의 화단 틈에 생화를 꽂아두고 관객들이 한 송이씩 가져가게 한다. 조건은 관객들이 그 꽃을 낯선 사람에게 건네주어야 한다는 것. 트위터 등 SNS에는 버스 옆자리 할머니, 미술관 경비원, 외국인 관광객 등에게 나눠지는 '움직이는 정원'의 꽃 이야기로 화사하다. 꽃의 교류가 작품을 완성하는 마지막 조각이었던 것이다.
박소영기자 sosyo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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