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정기 인사이동이 있던 다음날인 지난 해 12월 17일, 농협중앙회에는 하루 종일 농민들의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농협중앙회 측이 인사 관련 축하 난과 화분 건물 내 반입을 통제하겠다는 공문을 중앙회 관련 모든 기관에 발송했기 때문이었다. 난초 농가와 화훼단체들은 농협을 항의 방문했고, 중앙회 방침은 하루 만에 철회됐다. 해프닝은 그렇게 끝이 났지만, 농협이 농민의 현실을 이렇게 모를 수 있느냐는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공직자에게 3만원 이상의 선물을 받지 못하도록 하자는 일명 '김영란법(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안)'의 충격은 대단했다. 2011년 6월 첫 구상이 발표되고 사회적으로 반향이 일자 그 해 12월과 이듬해 1월 금융권과 공무원 인사철, 3월 교직원 인사철 등 꽃과 난초 대목 시장에 한파가 몰아 닥쳤다. 기본이 5만원대인 난초 시장의 타격이 더 컸다. 법안의 통과여부와 무관하게 미리 분위기를 살펴 안전한 길을 찾는 관가의 생리 탓인지, 그 여파는 아직도 완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말했다. 화훼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가장 대중적 선물용 난초인 5만원짜리 철골소심만 하더라도 중간 유통마진 다 빼고 최대한 가격을 낮춰야 3만원"이라며 "선물 값 3만원 제한은 꽃 빼고 리본만 보내라는 얘기이고, 난초 농가는 다 문 닫으라는 얘기"라고 말했다.
불황은 꽃집도 마찬가지다. 서울의 한 꽃집 주인은 "1988년부터 1997년까지가 가장 장사하기 좋았다"고 회상한다. 그는 "IMF 이후 꽃 경기가 좋은 때가 없다. 명예퇴직을 한 회사원이 연줄만 있으면 꽃집을 열어 경쟁은 더욱 세진 데다 요즘엔 직접 와서 꽃을 사는 사람은 거의 없고 대개 인터넷이나 전화 주문이어서 인사철과 결혼, 장례 등 경조사 때마다 꽃을 보내는 어지간한 규모의 기업 거래처가 없으면 버티기 힘들다"고 말했다.
경기가 나쁘면 서민들은 필수품이 아닌 소비부터 줄이기 마련. 꽃은 대표적인 사치품으로 인식됐다. 같은 사치품이라도 소비자의 취향에 부합하면 아무리 비싼 값의 가방이나 옷은 잘 팔리지만 유독 꽃만은 '촌스럽고 비실용적인 것'으로 인식돼 연인들의 선물 목록에서도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오죽하면 각종 기념일에 '가장 받기 싫은 선물'에 꽃 선물은 빠지지 않고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다.
거기다 2000년대 들면서 중국산 국화 등 저가 수입 꽃 비중은 해마다 거의 50%씩 시장 비중이 커지는 추세여서 화훼농가의 시름은 이중으로 깊어지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박승동 경매사는 "간판은 걸어두고 있지만 실제로 운영되는 농장은 3만여 개에서 1만여 개로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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