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건비가 싼 나라로 진출한 국내 기업들이 거센 마찰에 직면하고 있다.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현지 노동자들의 시위가 확산되면서 곳곳에서 충돌이 빚어지고 있다. 저임금에 기반한 국내기업들의 해외진출이 사실상 한계에 봉착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9일(현지시간) AFP통신과 현지언론 등에 따르면 방글라데시 남부 항구도시 치타공에 있는 한국수출가공공단에서 근로자 5,000명이 수당 축소에 반발해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와 경찰과 충돌, 현지 노동자 1명이 사망했다.
발단은 이날 월급을 받은 한국 의류업체 영원무역의 현지 신발제조업체인 카나풀리신발산업 노동자들이 수당이 축소됐다고 사측에 항의한 데서 시작됐다. 통근수당은 400다카(5,470원)에서 200다카로 축소된 반면, 식대 공제액은 50다카에서 650다카로 늘었다는 것. 노동자들은 이에 항의해 시위를 벌였고 이를 경찰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카나풀리신발산업 여성 노동자 파르빈 아크타르(20)가 총에 맞았다. 그는 병원에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고, 다른 노동자 13명과 경찰 3명이 부상했다.
사측은 방글라데시 정부가 지난달 의류업계 최저임금을 인상한 것을 임금체계에 반영, 전체 급여액은 높이되 일부 수당을 기본급으로 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공단 관계자는 "회사는 늘 법정 최저임금 이상을 근로자들에게 지급해왔고 식대 공제액 인상도 사전에 노사가 합의한 사항"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방글라데시에서 영원무역에 대한 시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85년 방글라데시에 진출한 영원무역은 2010년 말에도 임금문제로 대규모 노사분규가 발생, 현지 근로자 3명이 숨지고 250여명이 다쳤다. 이 때문에 영원무역에 대한 현지정서는 꽤 악화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우리나라의 봉제업체 60여곳이 진출해 있는 캄보디아에서도 노동자들이 월 최저임금을 현재 80달러에서 160달러로 2배 인상해줄 것을 요구하며 지난달 25일부터 시위를 벌여 유혈사태로 번지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캄보디아 주재 한국대사관이 한국업체 보호 공문을 발송해 유혈진압을 부추겼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캄보디아나 방글라데시 등에 진출한 우리나라 기업들은 대부분 의류 신발 봉제완구 등 인건비 의존도가 큰 노동집약업체들이다. 국내 임금이 상승하자 인건비가 싼 이들 국가에 생산시설을 구축했고, 일부 기업은 먼저 중국으로 갔다가 더 임금이 싼 동남아, 서아시아로 추가 이동을 했다. 하지만 이들 나라도 현재 임금인상요구가 본격적으로 분출되는 추세여서, 더 이상 '인건비 따먹기'식의 해외진출은 근본적 한계에 부딪혔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일각에선 국내 기업들의 잘못된 노무관리도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다. 일부 진출업체들이 현지 노동자들을 비인격적으로 대우하거나, 노조를 탄압하고 있다는 것. 민주노총 관계자는 "예전 1970~80년대 다국적 기업이 국내에 와서 노동자를 착취했던 것을 일부 한국기업이 해외에서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해당국의 인권과 노동기본권을 존중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사태는 더 악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고은경기자 scoop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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