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수 전담조직 부활' 방침을 밝힌 서남수 교육부 장관의 발언이 파장을 일으키자 교육부는 10일 진화에 나섰지만, 학계에서는 '사실상 국정화 시도'라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운용하기에 따라 교육과정 전반을 정부의 입맛대로 좌지우지할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이날 설명자료를 내 장관 발언의 의미는 "교육과정 및 교과서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과 권한을 가진 교육부의 관련 조직과 전문 인력을 보강해 지속적으로 교육과정 및 교과서의 질적 수준을 제고해 나가겠다는 의지"라고 밝혔다. 또 현재 국사편찬위원회(국사), 한국개발연구원(KDI∙경제), 한국과학창의재단(수학ㆍ과학), 한국교육과정평가원(나머지 교과) 등에 위탁, 위임한 검정체제도 유지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학자들이 거세게 비판하는 이유는 편수조직을 통해 교육과정과 교과서의 내용에 정부의 입김이 공식적으로 반영될 길이 열린다는 점이다. 더구나 지난해 역사 왜곡과 사실 오류로 큰 논란을 낳은 '교학사 교과서 사태'가 터진 이후 보인 교육부의 행보를 보면 그런 의구심은 더욱 커진다. 유례없는 무더기 수정권고에 이은 수정명령, 교학사에 치우친 추가 내용 수정ㆍ승인, 교학사 교과서 채택을 철회한 고교에 대한 특별조사까지 행정권이 더욱 깊이 파고들며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교육과정 개발과 역사교육제도 관련 전문가인 김한종 한국교원대 교수는 "일련의 상황을 보면 교육부가 특정 진영의 눈치를 보며 점점 깊이 개입을 하고 있다"며 "그런 와중 편수 조직까지 만든다면 국가기관이 교육의 내용을 세세히 간섭해 헌법에 보장된 교육의 자치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우려했다.
사실상 2004년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이 금성출판사의 고교 교과서를 '반미ㆍ친북ㆍ반재벌 교과서'라고 몰아붙이며 시작한 교과서 이념논쟁은 교과서 필자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쳐왔다. 2011년에는 뉴라이트의 주장이 반영돼 교과서 집필기준안에 대한민국의 건국ㆍ운영 이념이 '민주주의'에서 '자유민주주의'로 바뀌었다. 지금까지 두 차례 역사 교과서를 쓴 한 저자는 "보수진영이 시작한 이념논쟁으로 교과서를 쓸 때 위축이 된다거나 자기검열을 하게 되는 측면이 분명히 있었다"고 토로했다.
교육부가 만들 편수조직이 어떤 교과를 만들어 어떻게 교육할지를 정하는 교육과정부터 교과서 집필기준, 검정에 이르기까지 특정 진영논리에 따라 일일이 개입하기 시작하면 '껍데기는 검정, 알맹이는 국정' 체제도 가능하다.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는 "편수조직에 어떤 권한과 역할을 부여하느냐에 따라 사실상 국정화도 가능하다"며 "조정자의 역할이 아닌 특정 편에 써서 진영싸움을 하는 듯한 교육부를 보면 속내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교육부가 해야 할 일은 오히려 대강화 원칙(정부는 교육과정이나 교과서 집필의 큰 틀만 잡는다는 원칙)을 더욱 살리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한종 교수는 "선진국 중에는 우리나라처럼 교육과정에 단원명까지 세세하게 규정한 경우는 없다"며 "다양성과 자율성이라는 검정제도의 취지를 보장하려면 저자들을 너무 옭아매고 있는 제도를 느슨하게 풀고 저자들이 교과서를 더욱 전문성 있게 쓸 수 있도록 기초자료 조사 등을 도울 인력을 뒷받침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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