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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보는 2014 세계] <6> 교체되는 지구촌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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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보는 2014 세계] <6> 교체되는 지구촌 권력

입력
2014.01.10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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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내분 심각 "선거 차질"… 터키는 대통령 직선 첫 시행정국 불안한 아프간·이라크 미군 철수 후 독자생존 시험2월 조기총선 앞둔 태국 야권선 "연기" 요구 몸살인도·인니 정권교체 예상… 유럽은 극우파 득세할 듯

올해 대선과 총선을 치르는 국가는 전세계를 통틀어 40여 곳이다. 인도, 브라질, 인도네시아, 미국 등 인구 대국을 포함해 지구촌 유권자의 42%가 투표권을 행사한다. 이들 국가의 국내총생산(GDP)를 합산하면 전세계 GDP의 절반을 넘는다. 선거의 여파가 클 수밖에 없다. 특히 3년 전 '아랍의 봄'으로 통칭되는 민주화 열기에 휩싸였던 중동, 상시적인 정치 불안을 겪고 있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대거 선거를 치러 결과가 주목된다.

선거는 대의민주제의 필요조건이자 핵심 절차다. 미국 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에 따르면 선거를 실시하는 국가는 1989년 167개국에서 2012년 195개국으로 꾸준히 늘었다. 올해도 남태평양 섬나라 피지가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총선을 치르고 터키가 대통령 직선제를 처음 시행한다.

그러나 선거를 치른다고 해서 꼭 민주주의 국가는 아니다. 오히려 선거 과정에서 민주적 방식을 통해 해소되지 못한 갈등과 분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민주주의가 퇴보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선거를 통해 정적을 상시적으로 제거하는 러시아, 선거에 유리한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정책을 구사하는 남미 일부 국가가 그렇다. 올해 선거가 많아도 실질적인 민주주의의 확대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회의적인 전망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프리덤하우스는 실질적인 민주화가 된 '자유로운 국가'의 비율이 10년 이상 45% 안팎으로 답보상태라고 지적한다.

거꾸로 가는 '아랍의 봄'

2011년 동시다발적로 민주화 시위가 일어났던 아랍국가 10여 곳 중 이집트, 알제리, 시리아, 리비아, 튀니지, 레바논이 연내 대선 및 총선을 치른다.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과도정부가 들어선 이집트, 리비아, 튀니지는 새 헌법을 국민투표에 부친 뒤 이에 따라 선거를 실시한다. 민주정부 수립 절차를 밟는 모양새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이집트는 지난해 이슬람주의를 표방하는 첫 민선 대통령 무함마드 무르시를 축출한 군부가 세속주의·자유주의 진영과 손잡고 민정 이양 작업을 진행 중이다. 그러나 새 헌법에 군 권한 확대 조항을 넣는 등 사실상 군부정권 회귀라는 비판이 나온다. 리비아는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을 무너뜨린 반군들이 지역 군벌화되면서 사실상 무정부 상태다. 특히 유전이 풍부한 동부 지역의 일방적 자치 선언으로 분단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등 선거차질이 예상된다.

민주화 시위가 독재정권과 반군의 장기 내전으로 번진 시리아에선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이 대선 출마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내전에서 우위를 점한 데다 화학무기 자진 폐기를 조건으로 미국 등 서방의 무력개입을 막는데 성공한 것이 배경이다. 반군 측은 알 아사드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지만 내분으로 무기력하다. 서방은 시리아 내전 종식을 위해 이달 22일 열리는 국제평화회담에서 과도정부 수립, 선거 등 향후 정치일정이 논의돼야 한다는 원론적 입장만 내놓고 있다. 연임 규정을 철폐하며 15년째 장기 집권하고 있는 압델아지즈 부테플리카 알제리 대통령 또한 집권당 후보로 지명받아 4선 채비를 하고 있다.

중동 정세 뒤바꿀 선거들

온건ㆍ중도 성향의 하산 로하니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지난해 이란 대선은 핵협상 타결 등으로 이어지며 중동 정세를 뒤바꾸고 있다. 미국의 중동 내 주요 동맹국인 터키와 이집트 선거 역시 결과에 따라 향후 중동 정세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터키는 3월에 총선, 8월에 대선을 각각 치른다. 10년 동안 연임하며 터키를 안정적으로 통치해온 레제프 에르도안 총리는 지난해 수도 이스탄불의 공원에 쇼핑몰 건설을 무리하게 추진하다가 수만 명의 항의시위를 부른 데 이어 최근 자신의 아들과 장관들이 연루된 수뢰사건이 터지면서 궁지에 몰렸다. 내각 10명을 한꺼번에 교체하는 강수를 두고도 총리 퇴진 요구가 가라앉지 않는 것은 이슬람 율법정치를 표방하며 야당과 언론을 억압해온 그의 권위주의적 통치에 대한 불만이 자리하고 있다. 에르도완의 연임이 좌절되면 주변국들과 분쟁을 만들지 않는다는 외교정책으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 시리아 내전 등에서 역내 균형자 역할을 해온 터키의 위상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선거는 미군 철수 이후 독자 생존을 꾀하는 이들 국가의 시험대다. 4월 선출될 새 아프간 대통령은 연말 미군 철수 이후 정국을 안정시켜야 하는 난제를 맡게 된다. 헌법상 3연임 금지 규정에 따라 선거에 나오지 못하는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이 대선에 출마한 친형을 지원하며 권력 유지를 꾀하거나, 무장정파 탈레반이나 유력 군벌들이 미군 철수에 따른 치안 공백을 틈타 세 확장에 나설 경우 아프간 정국이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미군 철수 이후 극심한 종파 갈등을 겪고 있는 이라크는 시아파인 누리 알 말리키 총리가 세 번째 연임에 도전할 것으로 보인다. 집권당은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여 올해 총선 전망이 밝지는 않다. 하지만 사담 후세인 정권의 몰락으로 귀결된 이라크전 종전 이후 시아파, 수니파, 쿠르드족의 권력분점 구도를 유지하며 정국 안정을 꾀해온 만큼 임기 연장 가능성이 점쳐진다.

흔들리는 아시아 민주주의

최근 선거를 치른 방글라데시는 극심한 혼란에 휩싸였다. 야당은 총선을 주관할 과도정부 수립 요구를 정부가 묵살하자 선거에 대거 불참했고, 저조한 투표율 속에 여당이 총선 승리를 선언하자 이에 불복하며 총파업을 주도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 야권 시위대의 충돌로 100여명 이상이 숨졌다. 군부 정권이 몰락한 1991년 이후 번갈아가며 집권하는 여야의 알력으로 총선 때마다 혼란이 재연되고 있다.

2월 조기총선을 앞둔 태국의 사정도 비슷하다. 지난해 11월 집권 푸어타이당이 잉락 친나왓 총리의 오빠이자 부패 혐의로 실각한 탁신 친나왓 전 총리에 대한 사면법 통과를 추진하는데 반발해 시작된 반정부시위는 정권 퇴진 요구로 확산됐다. 잉락 총리가 조기총선을 선언하며 의회를 해산하는 승부수를 던졌지만 야권이 주도하는 시위대는 수도 방콕을 마비시키는 '셧다운 시위'를 공언하며 조기총선 연기를 요구하고 있다. 반정부시위를 이끄는 야권의 지지기반이 도시 중산층이라는 점 때문에 "민주주의가 미성숙한 국가에서 민주적 절차를 통한 정권 교체를 거추장스럽게 여기는 경향이 발견된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집트 군부의 무르시 축출에 중산층·지식인들이 포진한 자유주의ㆍ세속주의 세력이 가담한 것도 비슷한 상황이다.

28년 동안 장기집권하고 있는 훈센 총리가 지난해 7월 총선을 통해 또다시 임기를 연장한 캄보디아 역시 야권의 부정선거 시위에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합류했다. 뉴욕타임스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대거 소요 사태를 겪는 이유를 권력 불균형과 권력에 대한 감시 체제 미비로 진단하며 "이들 국가에서 안정적 민주주의를 구축하려면 선거만으로 부족하다"며 권력 감시기구 설립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신흥국 정치 리스크 오나

신흥국 가운데서는 브릭스(BRICS) 5개국 중 브라질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차세대 신흥국으로 불리는 미스트(MIST·멕시코 인도네시아 한국 터키) 중 멕시코를 제외한 3개국이 각각 선거를 치른다.

인구 12억명에 유권자가 8억명에 달하는 세계 최대 민주국가 인도는 올해 총선에서 정권 교체가 예상된다. 만모한 싱 총리와 간디 가문이 이끄는 집권 국민회의당이 경제난과 부패 문제로 민심을 잃었다. 반면 최대 야당 인도국민당은 지난달 총선 전초전 성격인 지방선거에서 승리를 거두며 주가를 높였다. 인도네시아 역시 7월 대선을 앞두고 '자카르타의 오바마'로 불리는 야권 인사 조꼬 위도도 자카르타 주지사가 압도적인 지지율을 기록하는 등 사상 처음 민주적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다. 남아공 집권세력인 아프리카민족회의(ANC) 또한 흑백 빈부격차, 높은 실업률ㆍ범죄율로 비판을 받는 데다가 정신적 지주였던 넬슨 만델라까지 타계해 총선에서 고전이 예상된다.

경기 부진에다 이 같은 대규모 정권교체로 세계경제가 '신흥국 정치 리스크'에 직면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유럽은 극우파 득세 예고

2009년 이후 5년 만에 치르는 유럽의회 선거는 재정위기와 금융위기, 이에 따른 반(反)유럽연합(EU) 정파의 득세가 본격화된 이래 처음 치러지는 것이다. EU 28개 회원국에서 동시에 치르는 이 선거에서 프랑스 국민전선, 영국 국민당, 네덜란드 자유당 등 유럽통합, 이민 자유화에 반대하는 극우정당의 약진이 예상된다. 이들 정당들은 유럽의회 선거에서 원내 교섭단체로 부상하려 적극 연대하고 있다.

EU 시민권자 이민 상한선 설정 여부를 결정하는 내달 스위스 국민투표는 유럽의회 선거에 앞서 유럽 우경화 강도를 가늠할 잣대다. 스위스는 EU에 가입하지 않았지만 2007년 EU 회원국에 대해 이민 상한을 철폐하며 EU의 자유로운 국경 이동 방침에 동조해왔다. 그러나 극우 성향의 스위스 최대 정당 국민당은 매년 8만명 규모의 외국인 유입으로 부동산 가격이 뛰고 의료ㆍ교육 체계에 부담이 되고 있다며 이민제한법안을 제출했다. 통과될 가능성은 낮지만 유럽 내 반이민 정서가 조만간 선거나 투표를 거쳐 절차적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징후로 읽힌다.

민주주의가 뿌리 내린 서구에서 반동적인 극우화 경향이 나타나는 이유로 선거에 기반한 대의민주주의의 구조적 한계가 거론된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선진국의 투표율이 1970년대 이후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는 점, 시민 대표로 선출된 정치인들이 중요한 정책결정권을 기술관료에게 넘기는 추세가 강화되는 점을 대의민주주의의 쇠퇴 요인으로 꼽았다. 재정위기 장기화도 민주주의 근간을 흔든다며 "현재 상황은 1930년대 대공황에 직면해 독일 나치가 발흥하는 등 유럽 민주주의가 불안정해진 상황과 흡사하다"고 이 주간지는 분석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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