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사한 봄날,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들로 장식된 정원에 미의 여신 비너스가 서 있다. 관능적으로 춤추는 세 명의 여신과 꽃의 여신 플로라에 둘러싸여 봄의 절정을 표현하고 있는 이 그림은 15세기 피렌체를 중심으로 만개했던 르네상스 회화의 대표작, 산드로 보티첼리의 '봄'이다.
로마제국의 시인 오비디우스의 에 묘사된 오월제의 한 장면을 화폭으로 옮긴 그림은 사실 은밀한 의도로 수없이 덧칠된 정치 선전물이다. 먼저 화면 왼쪽을 주목하자. 에는 거론조차 되지 않았지만 능청스레 화면 한 구석을 자치하고 있는 이 남자는 예언자 헤르메스다.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에서 모세 외에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고한 또 다른 예언자로 추앙 받던 이 인물이 왜 봄의 축제에 모습을 드러낸 것일까. 그림 한가운데 강조된 풍성한 월계수 가지도 의심스럽다. 뿐 아니라 당시 피렌체의 오월제에도 등장한 적 없는 이 식물을 보티첼리는 왜 그토록 풍성하게 강조했을까.
은 보티첼리,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등 천재 화가들을 낳은 르네상스 시대 예술 작품의 이면을 들여다본다. 흔히 르네상스의 주인공이라고 하면 중세의 암흑기를 벗어나 인간성의 해방을 선언한 예술가들을 떠올리지만 진짜 주역은 이들을 고용한 상인과 성직자, 인문학자들이라는 것이다. 당시 화가는 수공업자와 같은 위치로, 그림의 주제를 정할 권리가 없었다. 그림의 주문자였던 성직자, 상인, 인문학자들은 천재 화가들의 손을 빌려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성당과 수도원 내부에 그림으로 표현했다.
보티첼리에게 '봄'을 주문한 이는 15, 16세기 사실상 피렌체의 주인이었던 메디치 가문이다. 메디치 산하의 인문학자들은 스무 살의 나이에 가문의 수장이 된 로렌초의 입지를 튼튼히 하기 위해 새 시대를 상징하는 그림을 보티첼리에게 그리도록 했다. 가톨릭교회가 이단으로 여겼던 헤르메스와 고대 로마제국의 아우구스투스 황제를 상징하는 월계수는 '위대한' 로렌초의 시대가 열렸음을 암시하는 은밀한 장치였다.
책은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산 마르코 수도원에 있는 프라 안젤리코의 '그리스도의 수난' 등을 하나하나 분해해 그 뒤에 숨겨진 욕망과 정치적 메시지를 읽어낸다. 오늘날 피렌체를 아름답게 수놓고 있는 예술 작품들의 또 다른 얼굴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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