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검정제도를 1949년부터 도입한 일본에서도 검정제도가 사실상 사상통제라거나 정권이 원하는 국가관을 주입하는 장치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시민단체들이 이를 문제 삼아 30년이 넘는 소송까지 벌인 적도 있다. 한국, 중국 등에서 일본의 역사교과서를 문제 삼을 때도 일본 정부의 검정 개입이 단골 소재였다.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우익보수인 아베 정권 출범 이후 검정과정에 대한 일본 정부의 개입과 통제가 더 심해지고 있다. "사실상 국정 회귀"라는 지적까지 나왔다.
일본 문부과학성의 교과서 검정은'교과용도서검정조사심의회'가 담당한다. 한국의 '검정심의위원회'에 해당하는 조직이다. 해당 교과 관련 대학교수나 초중고 교사가 맡는다. 전문적인 내용을 조사할 필요가 있을 경우에는 심의회 안에 전문위원을 둘 수 있다. 이 전문위원에는 문부성 직원인 교과서조사관도 참여할 수 있다.
심의회는 문부성 외부의 인물로 구성된 장관 자문기구여서 외형상으로는 독립적이다. 하지만 한국의 검정위원과 유사하게 위원 선발권이 문부성에 있다. 심의 역시 문부성이 정한 검정기준에 따른 것이다. 우리 교육부가 만들겠다는 편수전담조직 같은 것을 두고 노골적으로 교과서 내용에 개입하진 않지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정권이 원하는 대로 교과서를 재단할 수 있다.
일본 시민단체가 교과서 검정을 본격적으로 문제 삼은 것은 1962년이다. 역사교육학자 이에나가 사부로가 집필한 가 지난 전쟁을 어둡게 묘사했다는 이유로 검정 불합격 조치를 받자 필자가 "검정제도는 사상 통제라서 위헌"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32년간 이어진 재판은 사실상 원고 패소로 끝났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검정제도의 문제점이 널리 알려졌다. 이 재판을 지원한 학자와 활동가들은 1998년 '아이들과 교과서 전국네트워크 21'이라는 시민단체를 구성해 지금도 활동 중이다. 이들이 2001년 일본의 우익단체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자학사관에서 탈피하자며 내놓은 후소샤 교과서 불채택 운동도 주도했다.
아베 총리는 2006년 집권 때 애국심 교육 강화를 담은 교육기본법을 새로 통과시켰다. 이 법에 근거해 새 학습지도요령에서 영토교육을 강화하도록 했다. 이후 영토 문제 등에서 일본 정부의 주장을 반영한 교과서가 대폭 늘었다. 다시 집권한 아베는 교과서에 대한 직접 개입을 강화하기 위해 이달 중 문부성을 통해 새로운 검정기준도 발표한다. '정부 견해나 확정 판결이 있는 경우 이에 바탕해 기술한다' '여러 학설이 있는 사건의 경우 다수설과 소수설을 균형 잡히게 담는다'는 내용이 새로 담긴다. 일본 학계와 언론은 당장 "학자들의 통설이 정부 견해로 바꿔치기 될 가능성이 있다"며 "사실상 국정교과서를 만들겠다는 소리"라고 비판하고 있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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