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때마다 집을 구하는 일이 쉽지 않다. 방 두 칸에 가족과 비비고 살만한 공간 하나를 찾는 일이 서울 바닥에선 고약한 일이다. 십 년이 넘게 나는 일 년에 한번 꼴로 이사를 해왔는데 올해는 유난히 이사가 버겁게 느껴진다. 아마도 내 거주지에서 손가락이 열 개이고 발가락이 열 개이며 잇몸이 붉은 아이가 태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방 계약이 만료되는 날짜가 다가오면 더럭 겁이 난다. 나는 시인인데 원고 마감보다 방 계약 마감이 아직 더 두려운 사람이다. 집주인은 편집자보다 전화는 잘 받고 친절한 사람이다. 하지만 편집자와는 달리 생떼를 써도 안 되고 핑계는 안 통하는 사람이다. 월세가 하루만 늦어도 그는 밤에 찾아와 초인종을 누른다. 초인종을 제일 먼저 알아보고 귀를 쫑긋하는 사람은 기어 다니는 아가다. 문을 열어주면 주인은 내게 어깨동무를 하고 밖에 나가서 이야기하자고 한다. 그는 친절한 사람이다. 면회하고 돌아온 수인처럼 나는 아이의 장난감을 들고 쓴웃음이 난다. 부부는 돌아누워 이불을 뒤척이는 소리만으로도 저 사람이 잠이 잘 안 오는 모양이구나 생각할 때가 있는데, 아내도 잠이 잘 안 오는 모양이다.
살았던 공간까지 데리고 함께 떠날 수 없는 것이 이사다. 짐도 버리고 갈 수 있다. 하지만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은 무슨 일이 있어도 데리고 떠나야 한다. 처음부터 내 것은 아니었으니 비워주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아내와 아이는 처음부터 내 것인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게 좀 미안하고 어이없어서 세상에 버럭 화를 내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다. 이 집을 떠나야 할 이유를 서로에게 설득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우린 조금 더 쓸쓸해지는 순간이 올 것이다. 계약되었으니 집을 비워주고 새집을 찾아야 한다. 매년 앞에 놓인 간단한 사실이지만 십 년 동안 해법을 찾지 못했다. 아직 망하진 않았지만, 기분이 망가진다.
"딱 한 집에서 5년만 살아봤으면…." 아내도 나와 더불어 사는 사람이라 생각이 같아지는 순간들이 있나 보다. 올해는 유난히 날씨도 춥고 방이 쉬이 구해지지 않는다. 전셋값이 폭등했고 집을 비우려면 들어올 사람을 구해야 하고, 가진 보증금으로 들어갈 집을 찾아야 한다. 아이를 오전에 어린이 집에 보내고 아내와 나는 각각 흩어져서 부동산정보를 통해 매물이 나왔다는 집으로 향한다. 핸드폰으로 서로가 지금 보고 있는 집 사진을 찍어 보낸다. 구석구석 찍어 보낸다. 받아보는 사진 속 타인의 살림들을 보면 심란해진다. 집을 구하기 위해 타인의 집에 들어가 방을 볼 때마다 그들의 애살스러운 삶의 결들 앞에서 눈을 돌리고 싶어지는 순간들이 있다. 세척이 안 된 식기들. 체모가 남아있는 이부자리. 아이들의 장난감. 구도 속에 흩어진 낯선 살림들의 풍경들을 찍어 보내야 한다. 방금 전까지 식솔들이 나누었던 온기들이 타자에 의해 노출되어지는 순간 누군가의 삶을 훔쳐보는 일은 마냥 즐거운 일만은 아니다. 우리와 같은 시세에 살림을 갖추고 사는 구석구석을 바라보는 일이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런 공간에서 산다면 이 정도 분위기를 받아들이고 사랑해야겠지? "하는 순간이 오기 때문이다. 아내와 나는 분위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분위기를 잘 파악하며 견딜 수 있을 것이다.
집을 구하러 다니다 보면 자신이 가진 물성의 조건이 객관화되는 경험을 여러 번 목격 해야 한다. 처음엔 짜증이 나다가 조금씩 받아들인다. 최상보다는 최악을 피해 보자는 심사로 투표하던 기분으로 우리 살림이 들어가야 할 방을 인정한다. 암환자는 병을 살림의 일부로 받아들이기까지 짧아도 6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암세포는 어디선가 밖에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자기 세포의 일부였음을 받아들일 즈음 삶에게도, 죽음에게도 더 이상 떼를 쓰고 싶어지진 않을 것이다. 부동산 중개인에게 언젠가 살고 싶은 집을 구경 좀 하고 싶다고 말했다가 "지금 장난치세요?" 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러니까 나는 살고 싶은 집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가 장난치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마감을 하듯이 집을 구하러 다닌다. 한 달 후 나는 어느 집에선가 다시 원고 마감을 하기 위해 끙끙거리고 있을 것이다. 마감 기념으로 부엌에서 아내와 블루스를 출 것이다.
김경주 시인ㆍ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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