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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에 억눌렸지만, 1960년대부터 움튼 노동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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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에 억눌렸지만, 1960년대부터 움튼 노동운동

입력
2014.01.10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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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동사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시기는 1980년대다. 섬유 등 경공업에서 남성 노동자 중심의 조선ㆍ자동차 등 중공업 기반으로 산업 구조가 재편되고 1980년대 말 권위주의 해체를 위한 민주화 운동과 결합하면서 투쟁적 노동운동이 태동한 까닭이다. 1960~70년대 박정희 정권 시절의 노동운동은 상대적으로 크게 조명받지 못했다. 이때는 노동운동의 침체기 또는 고난기로 평가받는다.

저자는 이 같은 지배적인 시각과 달리 1960년대에 적어도 일부에서는 민주적이고 전투적인 노동조합운동이 자라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미국 한국학의 대부 제임스 팔레(1934~2006) 교수를 사사한 남화숙 워싱턴대 교수는 1960년대 노동자들이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와 존엄성을 보장하는 민주국가에 대한 전망을 분명히 표현했다고 강조한다. 는 2011년 미국 아시아학회가 주관하는 한국학 분야 최고 권위상인 '제임스 팔레 저작상'을 받은 남 교수의 연구서다. 저자가 직접 번역에 참여한 한글판이 최근 발간됐다.

연구의 근거는 한진중공업의 전신으로, 1937년 조선중공업으로 설립돼 광복 후 대한조선공사라는 국영기업이 됐다가 1968년 민영화된 대한조선공사의 1만여 쪽에 달하는 노조 자료다. 1960~80년대의 대한조선공사 노조 활동 기록과 업무 일지, 조합원 통계, 조합원 명단, 이력서, 회의록, 정부 기구나 상급 노조와 주고받은 문서 등을 통해 저자는 당시 노동자들의 인식과 태도, 투쟁성의 사회정치적 배경 등을 분석함으로써 조선소 노동자들이 만들었던 노동조합과, 그들이 만들고자 했던 국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1960년대 노동자들이 무력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고 보는 통상적 견해로 보면 1980년대 후반 전국적 노동자 투쟁이 촉발된 데는 대학생과 교회 활동가 등 외부 세력의 역할이 컸다. 하지만 저자는 육체노동에 대한 차별 관행과 그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이 조선산업 노동자의 주체성 형성에 핵심 역할을 했고 이들 노동자가 이미 1960년대에 민주적이고 전투적인 노동조합운동을 꽃피웠다고 반박한다.

대한조선공사 사장에게 발송한 협조문 등에 따르면 당시 노조는 노사관계를 종속관계로 파악하고 노동조합에 비협조적 태도를 견지하는 사용자 측을 비민주적이고 전근대적이라고 비판했다. 사회적 위상과 산업화의 과실을 평등하게 향유해야 한다는 민주주의적 저항 담론을 생산해 낸 셈이다.

저자는 이들이 노사 간에는 물론 노동조합 내부에서도 민주주의를 실천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했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1960년 노동쟁의에 관한 협상 후 노조가 추가 조건을 제시한 노사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노조는 합의된 인상분 총액이 하후상박, 즉 임금이 낮은 노동자에게 인상분이 더 많이 돌아가는 원칙으로 분배돼야 한다고 요구한다. 또 당시 조합원 총회 투표의 내용을 보면 노조는 정규직 노동자만 아니라 임시공 등 비정규직까지 연대의 범위를 확장하는 문제를 다룬다.

저자는 1960년대 노동운동의 역사를 회복하는 것이 한국 노동운동사의 연결성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산업화 과정 등 해방 이후 한국의 근대사를 재조명하는 차원에서도 의미를 지닌다고 본다.

한국의 경제 발전을 연구하는 학자와 노동 정치 연구자들은 대부분 한국의 경제 기적이 '강한 국가'와 '약한 노동'이라는 식민지 시대 이래의 한국적 특수성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한다. 이와 달리 저자는 해방 직후 노동자와 농민의 대규모 움직임이 비록 패배로 끝났어도 다음 세대 노조 활동가들에게 중요한 문화적 자원을 남겼듯 1960년대 노동자의 투쟁성은 한국 경제 성장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한다. 박정희 시대의 '경제 기적'이 위로부터 강요된 근대화 프로그램의 산물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꾸준히 성장해 온 노동자들의 근대에 대한 추구, 대안적인 근대의 전망에 기대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일부 노동자에 국한한 연구에 따른 주장이기는 하지만 한국의 근대화를 소수 엘리트가 주도한 게 아니라 대중의 열망과 국가의 반응이 결합된 것으로 해석하는 흥미로운 실마리를 제공하는 책이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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