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의 전천후 야수 박용근(30)은 요즘 오전 9시30분이면 어김없이 잠실구장에 가장 먼저 출근 도장을 찍는다. 조정희 트레이너는 “워낙 투지가 좋은 선수라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말했다. 속초상고와 영남대를 졸업하고 2007년 2차 1라운드 3순위로 LG에 입단한 박용근은 성실함과 허슬플레이로 코칭스태프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김재박 감독이 지휘하던 2009년 101경기에 출전해 33득점과 도루 19개를 기록했고, 2010년에도 대주자, 대수비 요원으로 감초 같은 역할을 했다. 경찰청에서 2년간 군 복무를 마친 뒤 2012년 10월 제대한 그는 그라운드 복귀의 부푼 꿈을 앞두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고를 겪었다. 외부와 접촉을 차단한 채 치유의 시간을 보내던 박용근이 처음으로 그간의 근황과 심경에 대해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사고 직후에도 되뇌었던 말 “내일 야구해야 되는데….”
삼성과 SK의 한국시리즈가 한창이던 2012년 10월17일. 지인들의 모임에 동석했던 박용근이 범인이 휘두른 흉기에 피습을 당해 중태에 빠졌다는 뉴스가 삽시간에 퍼졌다. 제대한지 열흘 정도 밖에 되지 않은 날로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필이면 다음날 선수단의 첫 소집이 예정돼 있었다. “사고를 당한 순간 딱 떠오른 생각이 ‘내일 운동해야 하는데…’였어요.” 순간적으로 야구에 대한 걱정이 앞섰던 것이다. 곧바로 의식을 잃고 쓰러진 그가 대수술 후 눈을 뜬 건 사고 후 3일 뒤였다. “깨어난 지 며칠이 지난 뒤 정신이 들면서 ‘내가 다시 야구를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그러나 담당의사를 포함해 모두 비관적이었다. 아니, 야구라는 말을 누구도 꺼낼 수 없었다.
▲‘힐링 연애’로 찾은 새 삶
정신적인 충격도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좋지 않은 소식으로 화제가 되는 게 싫었고, 안정을 찾을 시간이 필요했죠.”한 달 만에 병상에서 일어선 그는 11월 고향인 속초로 내려가 3개월간 머물렀다. 어느 누구와 연락도 하지 않았다던 그가 휴대폰에 남겨 놓은 문자메시지 하나를 내밀었다. “너의 역량을 믿는다.”송구홍 운영팀장이 보낸 따뜻한 한 마디는 박용근에게 큰 힘이 됐다. 그리고 지난해 3월8일 다시 유니폼을 입었다. 3군을 거쳐 2군까지 가속도를 밟았다. 김기태 LG 감독도 지난해 박용근의 1군 복귀를 고심했을 믿기지 않는 페이스였다. 기적과 같은 회복을 도운 건 힘든 일을 겪으며 연인으로 발전한 가수 채리나(36)씨다. 늘 예의를 갖추고 주변 사람들을 세심하게 배려하는 채씨의 모습에 박용근도 점점 밝은 표정을 되찾았다. “사실 여자친구와 관계도, 열애도 제 입으로는 처음으로 얘기하네요. 어려울 힘이 돼 준 여자친구와 진지한 미래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투수 빼고 전 포지션 섭렵 “야구장에 다시 선 것만으로 행복.”
박용근은 15일 출발하는 미국 애리조나 전지훈련 명단에 외야수로 이름을 올렸다. 군 입대 전에도 가끔 외야수로 나선 적은 있지만 올 시즌엔 본격적으로 내ㆍ외야 겸업을 하기로 했다. 치열한 내야 경쟁률을 뚫기보다 장기인 유틸리티플레이어로 팀에 보탬이 되고 싶은 생각이다. 일본 고치 마무리훈련 때는 포수 마스크를 쓴 적도 있으니 투수를 제외한 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셈이다.
“지금 이 순간 저에게 야구를 잘 하고 못하고는 중요하지 않아요. 잠실구장에서 다시 야구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 행복합니다.”박용근의 야구 인생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더 이상 ‘내일 야구할 수 있을까’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성환희기자
한국스포츠 성환희기자 hhsung@hksp.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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