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계산동 일대에서 10년째 폐지를 줍고 있는 김모(77) 할머니는 최근 아찔한 경험을 했다. 오전 2시쯤 주택가 어귀에 쌓여 있던 빈 종이상자를 낡은 유모차에 싣는 순간 승용차 한대가 갑자기 후진한 것. 다행히 차량이 유모차와 충돌한 뒤 멈춰서 다치지는 않았다. 김 할머니는 "날이 추워 몸을 웅크린데다 유모차에 실은 폐지더미에 가려 차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겨울에도 생계를 위해 폐지 모으는 일손을 놓을 수 없는 노인들이 교통사고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이들은 상점이나 회사 업무시간을 피해 주로 늦은 밤이나 새벽에 활동하는데다 때가 덜 타는 어두운 색 옷을 입어 운전자들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폐지 모으는 노인들이 늘다 보니 더 바지런해져야 한다는 생각에 무단횡단도 잦다. 젊은 사람들도 몸놀림이 느려지는 겨울철 빙판길은 폐지를 실은 리어카를 끌고 다니는 노인들에게 더욱 치명적이다.
서울 종로5가역 인근에서 폐지를 줍는 이현선(73) 할머니는 "1㎏에 90원 쳐주는 박스를 주워 하루에 돈 만원이라도 손에 쥐려면 날씨가 추워도 무조건 빨리 움직여야 한다"며 "무단횡단도 하고 울퉁불퉁한 인도 대신 차도로 다닐 때도 많다"고 했다.
경찰도 먹고 살기 위해 도로교통법을 어기는 노인들을 단속하기는 쉽지 않다. 인천 계양경찰서 관계자는 "무단횡단을 하지 말고 차도 대신 인도를 이용하라고 말씀 드리는 정도로 안전교육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인천과 청주, 제주 등 일부 지역에서는 사고 예방을 위해 야광조끼를 지급하지만 지자체에 등록된 폐지수거업체(고물상)에 소속된 노인들에게만 돌아가는 실정이다. 서울시의 경우 등록된 수거업체는 774개지만 미등록 업체까지 포함하면 2,000곳을 헤아린다. 한 곳당 폐지를 모아오는 노인들은 줄잡아 100명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폐지 수거로 생계를 잇는 노인들에게 야광조끼와 방한모 등을 지원하는 내용의 조례를 발의한 김용석 서울시의원은 "폐지를 줍지 않아도 생계유지가 가능하도록 노인복지를 확대해야 하지만 당장은 궁여지책이나마 교통사고 예방을 위한 장비 제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아름기자 archo1206@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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