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수요일 영남대병원 '로비음악회' 출연국내외 대중가요·뮤지컬 등 다양한 레퍼토리 유명자작곡도 발표 '전문가'… 매주 찾는 '팬덤'도 생겨"사람과 소통의 시간… 은퇴 후 음악카페 열 것"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남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멋진지 아나요."
8일 낮 12시 30분쯤 대구 남구 대명동 영대병원 본관 로비. 우리에게 친숙하고 편안하게 해 주는 팝송 등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점심시간을 맞아 병원을 찾은 문병객과 환자, 보호자, 의사, 간호사 등이 로비 한 켠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카펜터스의 탑 오브 더 월드, 수잔 보일의 아이 드림드 어 드림 등 주옥 같은 팝송이 흘러 나왔다. 영남대병원 로비음악회 단골 출연자인 미국인 스티븐 트로스트(57) 교수의 공연시간이었다.
영남대 외국어교육원 교양영어 교수인 트로스트씨는 이날 녹색지대의 준비 없는 이별 등 인기 국내 대중가요도 선사했다. 때로는 직접 작곡한 곡도 연주한다. "창작곡이지만 이미 잘 알려진 곡처럼 반응이 좋으면 너무 신이 납니다."
병원인 탓인지 괴성은 없었다. 중간중간 작은 박수소리와 환호성이 대신했다. 공연 도중 사진을 찍기 위해 앞자리로 비집고 나오는 사람도 여러 명 보였다.
트로스트씨가 영남대병원 로비음악회 무대에 서게 된 것은 2010년 9월쯤. 우연히 병원을 찾았다가 다른 연주자의 공연을 보고 자신도 이 음악회에 함께 하고 싶다며 병원 측에 먼저 참여 의사를 밝혔다. 그는 매주 수ㆍ금요일 1주일에 2차례 열리는 음악회 중 매주 수요일에 거의 고정적으로 출연하고 있다. 영남대 로비음악회는 2000년부터 15년째 열리고 있는 장수음악회로서, 지역 음악인 등이 출연료 없이 봉사하고 있다.
트로스트씨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시간이 너무 즐거워요. 노래하면서 사람들 표정을 보면 음악을 즐기는 그들의 표정이 귀엽다고 해야 할까요? 부르다 보면 흥이 나 공연시간이 부족합니다"라고 말했다. 처음엔 향수를 달래는 등 자기만족적인 경향도 없지 않았지만, 요즘은 자신의 노래를 듣고 즐거워하는 환자 등을 보면서 힘이 쏟는다고 말했다.
병원 측에서 매주 출연을 받아 들일 정도로 그는 이제 인기스타가 됐다. 유명 뮤지컬, 팝송, 한국 가요 등 장르를 넘나드는 그의 공연시간에는 단골 팬들이 앞자리를 차지한다. 어느새 '팬덤'이 생긴 셈이다. 무대 앞에 마련된 테이블은 빈자리가 없다. 가족과 함께 병원을 찾은 이지택(50)씨는 "진료를 기다리는 시간이 지겨운 줄 모르겠다" 며 "환자들에게도 너무 시끄럽지 않다면 활기를 찾아주는 시간일 듯하다"고 말했다.
그가 한국을 찾은 것은 2003년.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강원도 원주에 둥지를 틀었다가 2010년 여름 영남대에 일자리를 얻어 대구에 왔다. "미국에서 살던 곳에 한국인들이 많아 특별한 문화적 충격은 없어요. 룸메이트도 여자친구도 한국인이었죠. 한국어를 잘했는데, 한국생활 10여년만에 실력이 되레 줄었습니다. 한국사람들이 저만 보면 영어로 얘기하는 바람에…"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한국인 배우자를 맞은 그는 한국 생활이 어려운 것은 없는데 도로에서 한국인들의 과격한 운전이 가장 무섭다고 말했다.
그가 매주 콘서트를 열게 된 데에는 우월한 음악적 유전자 영향이 크다. 부모형제들 상당수가 밴드나 트럼펫 솔로주자를 맡고 있다. 자연스레 음악과 가까이했고, 밴드활동도 했다. 대학에서는 작곡을 공부하기도 했다. 이런 그의 재능과 열정이 머나먼 이국 한국땅에서 자원봉사를 통해 꽃피우는 셈이다.
"제가 좋아서 하는 것이어서 너무 행복해요. 지금이 굉장히 편하고 즐거워 당분간 한국을 떠날 생각이 없어요. 은퇴하면 이곳에 카페를 열고 손님들에게 내 노래를 들려주고 싶어요." 트로스트 교수는 올해도 매주 수요일 낮, 영남대 로비를 지킬 것임을 약속했다.
배유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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