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단계'(이산가족 상봉)에서 물꼬를 튼 뒤, '높은 단계'(남북경협ㆍ비핵화 논의)로 끌어 올리려던 박근혜 대통령의 갑오년 '한반도신뢰프로세스'가 시작부터 어그러졌다. 올해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개선 가능성을 내비쳤던 북한이 인도적 만남조차 거부함에 따라 향후 남북관계 전망과 우리 정부 대응이 주목된다.
북측의 박 대통령 신년 이산상봉 제의 거부로 당분간 남북 관계를 복원시킬 동력 마련이 어렵게 됐다는 게 통일부와 관련 전문가들의 대체적 분석이다. 한 관계자는 "박 대통령 제의는 일단 끊겼던 대화 통로를 복원하자는 취지였는데, 북한이 '그럴 필요조차 없다'고 강하게 반발하고 나온 형국"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다음 달부터 4월말까지 한미 연례 군사훈련인 키리졸브 및 독수리 연습이 잇따라 예정된 만큼 남북관계는 5월 이후에나 관계 개선 여부를 타진할 수 있게 됐다"고 전망했다. 양측 당국의 관계진전 의지에도 불구하고 향후 2, 3개월 동안은 남북 대화가 끊긴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5월 이후 상황에 대해서도 낙관론과 비관론이 엇갈린다. 일단 낙관론의 가장 큰 근거는 북한이 '좋은 계절에 마주앉을 수 있을 것'이라며 여지를 남겨둔 점이다. 금강산 관광을 이산 상봉과 연계시켜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해석되지만 양측이 서로를 자극하지 않고, 상황관리만 제대로 한다면 이산상봉 협의가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취지를 담은 것으로 보인다. 이산상봉이 금강산 관광 재개와 연계돼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남북현안에 대한 전면적인 대화국면으로 전환될 수 있다. 물론 금강산 관광 중단의 계기가 됐던 박왕자씨 피격사건 해결을 위한 남북 양측의 조정 과정에 마찰이 있을 수 있지만 이 고비만 넘는다면 대북 경협을 중단시킨 '5.24 조치'를 해제하는 연쇄적 해빙 무드도 가능하다.
하지만 현 정세에서는 비관론이 우세한 게 사실이다. 무엇보다 남북관계의 획기적 진전은 북한의 비핵화 조치 문제와 연계돼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신년사에서 경제개혁과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뜻을 남기기는 했지만 여전히 비록 온건한 형태지만 핵 무력 강화 의지 역시 드러내고 있다. 신년사에서 표현한 '새로운 병진노선'은 곧 핵 무력 건설과 경제건설을 병행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이 이전에는 사용하지 않았던 '핵전쟁'이라는 표현이 5차례나 등장한 것을 보면 북한의 핵 개발과 핵 능력 고도화는 국가보위 차원에서 양보할 수 없는 '국사'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은 북한 신년사와 관련, "남북관계 개선 주장은 '핵'문제를 들춰내지 말고 경제지원을 해달라는 정도"라고 분석하고 있다.
북측의 자세가 이러하다면 낮은 단계의 신뢰구축이 어느 정도 진행된다 하더라도 결정적인 시점에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박 대통령의 통일담론이나 한반도신뢰프로세스가 순탄할 수 없는 이유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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