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벌의 웨딩드레스가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20여년 동안 딸 같은 처녀들의 새 삶을 열어주는 순백의 드레스를 한 땀 한 땀 만들던 일이 그의 자부심이었고 생활이었다. 무릎 통증은 그랬던 장모(68)씨에게서 자부심과 생활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15년 전쯤부터 조금씩 아프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계단 몇 개 오르내리기도 어렵고 통증 때문에 잠조차 제대로 못 자는 날이 이어졌다.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해 10년 전쯤 웨딩드레스를 손에서 놓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생계마저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하지만 장씨는 지금 엄홍길휴먼재단과 연세사랑병원의 도움으로 한번 더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다시 일할 수 있다면 내 인생에서 제일 아름다운 웨딩드레스를 만들고 싶다"고 말이다.
무릎 통증으로 고생하는 동안 장씨가 병원에 안 갔던 건 아니다. 일하는 짬짬이 물리치료나 주사치료를 받고 진통제도 썼다. 하지만 대부분 일시적으로 통증을 줄여 주었을 뿐 근본 원인을 해결해주지는 못했다. 한창 일하면서 형편이 넉넉할 땐 관절내시경 치료도 받았지만 이후 적절히 관리하지 못해 더 이상 일하기 힘들 만큼 통증이 심해졌다.
불행은 연달아 찾아왔다. 남편이 갑작스런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시댁과 재산 문제로 다투면서 집과 생활비도 잃었다. 대전에 있는 친정과 서울 사는 동생 집을 오가며 정부가 지원하는 최저생계비로 간신히 생활할 수밖에 없었다. 무릎이 나아 옷이라도 만들 수 있다면 생활에 보탬이 될 텐데 하는 생각이 간절했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그러던 중 인터넷을 통해 우연히 엄홍길휴먼재단과 연세사랑병원의 '저소득층을 위한 줄기세포 후원 캠페인'을 접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신청한 장씨가 후원 대상으로 선정된 것은 지난해 말이다. 성탄절에 입원해 검사를 받은 결과 퇴행성관절염 진단이 나왔다. 선 자세로 오랫동안 일한 데다 노화까지 겹쳐 왼쪽 무릎은 벌써 중기에서 말기로 넘어가는 중이었고 오른쪽은 초기에서 중기 사이쯤 증상이 진행돼 있었다. 게다가 왼쪽 무릎은 연골 손상이 심해 다리가 전체적으로 O자 모양으로 휜 상태였다.
무릎 퇴행성관절염은 연골(뼈와 뼈 사이인 관절에 들어 있는 무른 뼈)이 손상된 정도에 따라 증상이 초기, 중기, 말기로 구분된다. 초기 환자는 계단을 오르내릴 때 통증을 느끼고 중기면 평지를 걸을 때도 아프다. 말기가 되면 가만히 있어도 통증을 견디기 힘들어진다. 고용곤 연세사랑병원장은 "초기엔 주로 약물이나 재활치료를 하고 중기엔 연골재생술이나 줄기세포 시술을 하며 말기엔 인공관절 수술로 치료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연골재생술은 환자 자신의 연골 조직이나 세포를 떼어 손상된 부분에 이식해 회복을 돕는 방법이다. 줄기세포 시술은 환자 자신의 골수 또는 지방에서 채취하거나 다른 사람의 탯줄혈액에서 얻어 의약품처럼 대량 생산한 줄기세포를 손상 부위에 직접 주입해준다. 고 원장은 "약 1시간 30분에 걸쳐 (장씨의) 오른쪽 무릎은 줄기세포로, 왼쪽은 줄기세포와 근위경골절골술(휜다리 교정술)로 치료했다"고 말했다. 근위경골절골술은 무릎 정강이뼈(경골)의 위쪽 끝부분(근위부)을 부러뜨린 뒤 뼈와 뼈 사이에 이식용 뼈를 넣어 고정시키고 휘어 있는 다리를 반듯하게 펴주는 수술이다.
재활치료를 받으며 회복 중인 장씨는 퇴원을 앞두고 있다. "힘들고 우울했던 날들을 잊고 건강한 삶을 되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장씨는 말했다. 지난해 시작한 이 캠페인은 장씨처럼 경제적인 이유로 치료받지 못하는 저소득층 퇴행성관절염 환자들의 의료비를 지원하고 있다. 엄홍길휴먼재단이 대상 환자를 선정하면 병원이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 환자 자신은 물론 가족이나 지인, 사회복지단체 관계자의 대리 신청도 가능하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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