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제안한 연초 이산가족상봉 재개 제의를 사실상 거부했다. 북한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은 어제 통일부에 보낸 통지문에서 "남측에서 다른 일이 벌어지는 것이 없고 우리의 제안도 다같이 협의할 의사가 있다면 좋은 계절에 마주 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통지문은 이어 "남측에서 곧 대규모 합동군사연습이 벌어지는데 총포탄이 오가는 속에서 상봉이 마음 편히 되겠는가"라고 해 다음달 예정된 한미 연합군사훈련(키졸브 연습)도 한 원인임을 내비쳤다.
통지문을 보면 북한이 우리 제의를 명확히 거부한 것은 아니다. 애매한 말로 여러 조건을 붙이긴 했지만 '좋은 계절'을 언급한 만큼 추후 상봉이 실현될 여지는 남겼다. 그러나 내용에서는 지난해 8월 이산가족 상봉을 막판에 좌초시킨 당시의 입장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당시 북한은 금강산관광 재개와 이산가족상봉 연계를 요구했으나 우리 정부가 분리추진을 고수하자 상봉행사 불과 사흘 전에 일방 취소했다. 이번 통지문에서 밝힌 '우리의 제안'이란 금강산관광 재개를 의미하는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또 남북관계 단절의 책임을 우리측에 떠넘길 때 쓰던 단골메뉴인 키졸브 연습도 빼놓지 않았다.
북한이 인도주의적 사안을 금강산관광이나 군사훈련을 들어 거부한 것은 명분이 없다. 특히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들고 나온 것과도 맞지 않는다. 우리가 대한적십자사 명의로 한 제안에 대해 답변을 통일부로 보낸 것도 의도적이다. 북한이 우리측 제안 사흘 만에 입장을 밝힌 것은 이런 여러 상황 때문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산가족상봉을 정치ㆍ경제적으로 이용하려는 북한의 태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새해 북한의 자세변화를 기대했던 만큼 실망이 크다.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을 원한다면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라"라고 한 것은 당연한 대응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새해 첫 대북제안이 거부된 것은 앞으로의 정책 운용에 적잖은 부담이 될 게 틀림없다. 따뜻한 봄 이산가족상봉이 성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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