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초 다리를 삐끗해 M사의 복제약(제네릭) 소염진통제를 발랐던 김모(40)씨. 신약(오리지널)보다 값이 싸지만 효과는 똑같다는 약사의 말만 믿고 구입했지만, 얼마 후 이 약이 약효를 검증하는 시험결과를 조작한 약이라는 보건당국의 발표를 듣고 분통이 터졌다. 정부를 믿고 "싸지만 효과는 같다"는 약을 샀지만 실제 약효가 있었는지 전혀 확인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복제약의 생물학적동등성(생동성)시험결과를 조작해 시험기관과 제약회사가 부당하게 가로챈 약제비를 환수해달라며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낸 소송에서 대법원이 처음으로 이를 돌려주라는 판결을 내렸다. 생동성시험은 특허만료된 신약을 본떠 만든 복제약이 신약과 동등한 약효를 나타내는지 증명하는 시험이다. 이 시험을 통과해 건강보험 급여항목으로 등재되면 2007년까지만 해도 약가우대제도를 적용받아 신약의 80%까지 약값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2007년 M사 등 94개 제약사, 18개 시험기관이 시험결과 조작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복제약에 대한 불신이 높아졌고 환자들은 울며겨자먹기로 비싼 신약을 찾았다. 또한 나가지 않아도 될 수백억원의 건보재정이 낭비됐다.
9일 건보공단에 따르면 대법원3부(재판장 박보영 대법관)는 지난달 26일 공단이 제약사인 M사 및 생동성시험기관 L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 상고심에서 "생동성시험 자료조작은 불법이고 이로 인해 시험기관이 4,200만원의 손해를 끼쳤다는 공단의 주장이 타당하다"며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했다. 2011년 11월 서울고법은 "L사는 139건의 데이터를 섞는 등 심한 조작행위를 했지만 불법행위로 볼 수 없다"고 원고패소 판결을 했었다.
더욱이 대법원은 제약사도 책임이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재판부는 "제약사에도 불법책임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고법 판결은 부당하다"며 "제약사의 책임여부를 다시 심리하라"고 판시했다. 판결문에 "L사의 담당 직원에 따르면 M사와의 개인적인 친분을 강조하면서 시험결과를 (M사의 요구에) 맞춰주기를 원하는 상사 때문에 이 사건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적시, 제약사의 책임을 따지도록 했다.
생동성시험 조작사건에는 국내 굴지의 제약회사들이 모두 연루돼 있어 이번 판결의 파장은 적지 않을 전망이다. 공단은 현재 93개 제약사를 상대로 864억원의 손해배상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형사재판이나 행정소송에서 제약사의 책임이 인정됐을 뿐 22건의 민사소송에서 제약사의 배상이나 부당이득반환을 인정한 판결은 없었다.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된 7건 모두 시험기관에만 책임을 물었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이 사건으로 환자들은 약효가 검증되지도 않은 약을 복용했고 부당하게 건보재정이 낭비됐다"며 "앞으로 진행될 소송에서 제약사들에게 손해액을 돌려받을 길이 열렸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