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후’의 나훈아, 이제는 돌아와야
옛날 노래 다시 부르기 열풍이 한창이다. 아니, ‘명곡’ 다시 부르기다. 옛날 노래라고 하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인 말이 된 분위기다. 맞다. 긴 세월을 뛰어넘어 여전히 매력을 뽐내는 곡들을 명곡이라고 부르는 게 정확한 표현이다.
사람들이 세월이 녹아든 노래에 열광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우리가 이만큼 이루었다는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 또 하나는 힐링. 귀에 익은 노래를 들으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이다.
가요는 원래부터 그랬다. 힘없는 백성들과 함께하며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나훈아도 예외가 아니다. 그는 데뷔 이래 ‘고향역’ 같은 고향 노래를 비롯해서 허전하고 아쉬운 마음을 달래는 노래를 발표했다. 나훈아의 깊고 오랜 힐링 경력은 사람들이 그의 귀환을 그토록 기다리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그가 데뷔할 즈음, 대한민국은 산업화에 박차를 가하던 시대였다. 서울과 지방의 대도시에는 고향을 떠나 도처에 취직한 젊은이들로 넘쳐났다. 그들은 고향 노래를 들으며 팍팍한 타향살이에 지친 마음을 힐링했다. ‘머나먼 고향’, ‘고향의 그 사람’, ‘물레방아 도는데’ 모두 고향을 노래한다.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노래는 ‘고향역’이다.
#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 깊어진 그의 노래
그 시절, 추석과 설날이며 역과 버스 정류장에는 귀향 인파가 넘쳐났다. 밤을 새워 예매를 하고 기차를 기다렸다. 양 손에 한 가득 짐을 들고 콩나물시루 같은 열차와 버스를 타고 몇 시간이나 달렸지만 힘든 줄을 몰랐다. 고향에서 ‘이 몸을’ 기다리고 있을 부모님과 친구들을 생각하면 며칠을 그렇게 내달려도 거뜬할 것 같았다. 이쁜이, 꽃분이가 기다리고 있고 어머님이 흰 머리 날리면서 달려오는 고향을 간다는데 하루 이틀 고생쯤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리움의 무게는 곧 삶과 노동의 무게였다. 그 무게를 조금이나마 줄여주고 언젠가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와 희망이었던가.
나훈아의 힐링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 웅숭깊어졌다. 혹자는 말한다. “20대 때 나훈아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나훈아가 아닌 느낌도 든다”고. 나훈아의 창법이 조금씩 변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만 목소리에 스민 진정성도 계속 깊어졌던 것이다.
중장년층의 힐링을 위해서라도 그는 돌아와야 한다. 기실, 대한민국은 노래로 힐링 중이다. 전국에 가요교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가수마다 콘서트로 바쁘다. 그렇게 많은 콘서트가 열리는 건 사람들이 힐링을 필요로 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부족하다. 7ㆍ80년대 지금은 중장년이 된 그 시절의 청춘들과 함께 울고 웃었던 가수가 부재중이다. 기다림은 이제 염원이 되었다.
나훈아는 공인이다. 공인은 개인과는 다르다. 어느 정도는 국민이 원한다면 어쩔 수 없이라도 따라가야 할 의무가 있다. 나훈아도 공인으로서 팬들의 열망을 다시 한번 생각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트롯계를 위해서 돌아와야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무대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 나훈아는 전설이다. 무대에 처음 오른 뒤로 한번도 정상의 자리를 놓친 적이 없다. 후배 가수들에게 그보다 큰 모범과 희망이 어디 있을까. 그들 모두 나훈아의 귀환과 멋진 마무리를 고대하고 있다. 가장 훌륭한 롤 모델 하나가 마지막까지 가보지도 못하고 하릴없이 사라진다면 가요계는 또 얼마나 가벼워질 것인가.
어떤 분야든 가장 위험한 발상은 ‘한탕주의’다. 반짝 벌고 사라지겠다는 생각으로 노래에 덤벼드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평생을 진득하게 노래하면서 실력을 쌓겠다는 각오보다는 그저 날 나가는 한때를 철저하게 이용하겠다는 이들이다. 나이 들기 전에 그 한때를 만들려고 아등바등하느라 불미스런 일도 적잖게 일어난다.
무대에서 죽을 때까지 노래하고 싶다는 ‘순수한’ 생각을 가진 후배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라도, 나훈아는 돌아와야 한다. 무대에 뼈를 묻겠다는 각오와 소망을 가진 가수가 하나라도 더 나와야 이 나라의 가요계에 희망이 있다.
게다가 최근 트롯이 여러 가지 악재를 겪고 있다. 가벼운 노래들이 넘쳐나는 것도 문제지만 톱스타들이 사생활 문제로 이미지를 떨어트렸다. 대스타가 나와서 다시 기운을 불어넣어야 할 시기다.
# 팬들도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팬들도 조금 더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최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형 가수들이 언론을 통해 나훈아와 공연을 펼치고 싶다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내비쳤다. 안타까워하고 고대하는 마음을 놓고 이야기하자면 팬들도 그에 못지않을 것이다. 나훈아의 공연에 열광하는 팬들이 앞서서 이끈다면 다른 이들도 ‘대한민국 대표 가수’의 귀환을 보다 적극적으로 요청하지 않을까.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했다. 나훈아는 이미 손을 내밀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가 내민 손을 마주칠 이들이 필요하다. 어쩌면 우리의 용기가 그의 귀환을 앞당길 것이다.
대한민국은 나훈아를 부르고 있다. 그의 노래와 몸짓, 말투 하나하나가 우리에게 힐링 그 자체였다. 벌써 6년, 더 늦기 전에 ‘불후의 나훈아’가 우리 앞에 다니 나타나주길, 팬의 한 사람으로 간절히 고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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