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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여성들이 아들뻘 스타에게 빠진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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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여성들이 아들뻘 스타에게 빠진 까닭

입력
2014.01.09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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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클리프 리처드를 얘기할 때는 '팬티' 얘기가 빠지지 않는다. 그가 1969년 10월 19일 서울시민회관(현 세종문화회관)에서 내한공연을 했을 때 극성 여대생팬이 팬티를 벗어 집어던지기까지 했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기 때문이다. 동방예의지국의 처녀들이 남자가수를 향해 울부짖다 못해 무대 위로 속옷을 던졌다는 얘기가 회자되자 기성세대들은 경악했다. 한국 연예기자 1호인 정홍택씨에 따르면 여대생들이 집어던진 건 팬티가 아니라 선물과 손수건. 공연 주최자 중 한 명인 그는 팬들이 무대에 던진 물건들을 직접 수거했다면서 팬티 투척은 낭설이라고 밝혔다. 당시 여대생들이 던진 게 손수건이든 팬티든 간에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스타를 향한 여성 팬의 충성도는 확실히 경악할 만하다. 경제력과 사회경험이 있는 이모팬들이 팬덤으로 유입하면서 충성도는 되레 강해졌다. 실제로 공연장에 가면 적게는 열 살, 많게는 스무 살, 서른 살 차이가 나는 연하의 꽃미남 스타에게 푹 빠진 이모팬을 적잖게 볼 수 있다. 주로 아이돌인 미소년 스타들은 이모팬(아줌마 팬, 주부 팬 등)의 욕구를 정확히 파악해 그들의 마음을 훔치고, 위로하고, 매혹한다.

한국의 팬문화는 조용필을 따르던 1980년대 오빠부대와 서태지와 아이들, HOT를 동경하던 1990년대 1020세대를 거쳐 꾸준히 변화했다. 그리고 어느새 30∼50대 이모팬뿐 아니라 60, 70대 할머니팬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모팬들은 스타의 일거수일투족을 쫓는 어린 사생팬과는 달리 스타의 사생활을 존중하고 염려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모팬들은 스타의 이름을 딴 버스를 대절해 '성지 순례'를 다니고, 공연 관람을 위해 해외 원정도 불사한다. '우리 오빠'만을 외치는 어린 팬들의 폐쇄성을 이모팬들은 비웃는다. 이모팬들은 '우리 오빠는 만인의 오빠'를 외치며 스타 명의로 기부하는 등의 성숙한 행동으로 팬덤 문화를 바꾸기도 한다.

실제로 박유천 이민호 이승기 장근석 이종석 김수현 등은 이모팬이 많기로 유명하다. 이들의 이모팬은 적극적이고 성숙한 팬덤을 자랑한다. 자신의 스타가 어려움에 처할 때 세력을 과시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물론이고 팬덤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책을 쓰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이모팬덤을 구성하는 개개인의 이모팬이 아이돌 스타에게 사랑을 표현함으로써 얻는 건 뭘까.

남편과 두 아들을 두고 있는 주부 한모(42)씨. 한씨는 지난해 여름까지 우울증 초기 증세를 겪었다. 아들이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만 해도 한씨는 집안의 유일한 여성으로서 남편과 아들들의 관심을 독차지했다. 하지만 고학년이 된 아들들의 말수가 점점 줄더니 중학교에 들어간 뒤에는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왔습니다" "네" "아니오" 등의 말만 입에서 나왔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문제를 일으키거나 엄마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여전히 착하고 모범적인데 단지 엄마와 할 말이 별로 없는 것뿐이다. 그러다 보니 한씨는 남편과도 많은 얘기를 나누지 못한다. 직장일이 바빠 얼굴을 볼 시간이 없는 데다 그나마 아이들에 관한 대화도 뚝 끊긴 탓이다.

한씨는 "남편이 결혼기념일엔 잊지 않고 선물을 주고 두 아들은 어버이날마다 감사 편지를 썼지만 난 점점 더 외로워졌다"고 털어놓았다. 한씨는 "몇 년간 남자 세 명에게 밥을 먹이고 그들의 옷을 빨고 잠자리를 편안하게 하는 데 내 모든 시간을 투자했는데 내게 돌아온 건 하루에 단 몇 마디가 전부였다"고 말했다. 한동안 심한 우울증에 빠진 한씨를 구한 사람은 남편도 자식도 아닌 배우 이종석이었다. 한씨는 지난해 여름 방영된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보고 이종석에게 빠져들었다. 한씨는 "몇 년 만에 가슴이 뛰었다"며 "이종석의 눈빛이 날 살렸다"고 했다. 한씨는 "이종석은 나의 외로움을 걷어내고 나도 다시 사랑할 수 있는 걸 알려준 사람"이라고 말했다. 한씨에게 이종석은 직접 만나 연애를 하는 건 아니지만 온전히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인 셈이다. 한씨는 "흔히 말하는 팬질에 아주 적극적인 건 아니지만 선배 이모팬들의 지도를 잘 따르려고 한다"며 "시간이 되는대로 이종석의 스케줄을 챙기고 있다"고 했다.

가수 닉쿤을 '남자친구'라고 부르는 주부 정모(36)씨는 자신도 몰랐던 성적 열망을 닉쿤이 깨우쳐줬다고 했다. 정씨 역시 한씨처럼 큰 문제 없는 가정생활을 했지만 남편과 아이들의 무관심에 지쳤던 게 사실. 정씨는 "닉쿤의 따뜻한 눈빛과 미소를 본 순간 가슴이 뛰었다"며 "닉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진다"고 했다. 정씨는 남편과의 사이가 되레 좋아졌는데 그 이유로 남편을 닉쿤과 동일시한 것을 들었다. 정씨는 "남편이 알게 된다면 기분이 나쁘겠지만 사실 남편에겐 뜨거운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며 "그를 닉쿤이라고 생각해야 가벼운 대화나 스킨십에서 몸에 열기가 돈다"고 했다. 그는 "남편도 그런 나를 싫어하지 않고 예전처럼 잔소리도 별로 안 해서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팬덤의 어원은 '열광적인'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는 영어의 '파나틱'(fanatic)과 특정한 세력권을 뜻하는 '덤'(dom)이 합쳐진 말이다. 즉 팬덤은 특정한 대상에 열정적인 관심을 가진 집단의 문화로 정의할 수 있다. 열정적인 관심 한편에는 피사체에 대한 강렬한 욕망, 그 중에서도 성적인 욕망이 놓여 있다. 10대들이 가장 강력한 팬덤을 발휘하는 건 사회가 정신적 미성숙을 이유로 어른의 몸을 가진 그들의 욕망을 가장 많이 억누르기 때문이다. (각각 유부녀라는 이유로,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욕망을 억압받고 있다는 점에서, 또 그 욕망의 투사체를 꽃 같은 아이돌에서 찾는다는 점에서 이모팬과 소녀팬은 닮았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대부분의 여성 역시 사랑을 쏟을 대상이 필요하다. 실제로 많은 전문가는 중년 여성들이 아들뻘 스타들에게 빠지는 이유로 그들이 돌볼 대상을 상실하는 데서 오는 공허한 감정을 메우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때문에 이모팬들의 팬심은 앞에서 밝힌 두 사례처럼 우울증도 극복할 수 있는 강력한 감정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일부 이모팬의 과도한 팬덤 문화를 우려하기도 한다.

우울증을 벗어나게 할 정도로 강력한 감정은 스타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늘어나게 하고, 이는 동전의 양면처럼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위험성이 있다. 가족에서 채우지 못하는 감정적인 부분을 스타에 대한 무조건적인 애정으로 채우는 것이기 때문에 가족 관계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 스타도 사람이다. 그들이 불미스러운 일, 특히 여자 문제로 구설수에라도 오르면 일부 이모팬은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가공할 매력의 상상 속 애인에게 큰 배신감을 느끼고 급기야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실제로 세계적 스타인 성룡은 자신의 열애설로 인해 일본팬 2명이 자살했다고 밝힌 바 있다. 스타를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비뚤어진 욕망이 화를 부르기도 한다. 한 박유천 이모팬은 다른 팬을 질투해 인터넷에 신상을 공개하고 협박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된 바 있다.

문제는 중년 여성들에게 감정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딱히 없다는 데 있다. 스타에 대한 열정이 이모팬들에게 상실감에서 벗어날 탈출구를 제시할 수 있지만 팬심과 일상생활 사이의 균형을 잡기란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다원화된 팬덤 문화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이모팬 문화가 중년 여성들의 생활 만족도를 높여주는 순기능을 갖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조카나 아들뻘 스타들에게 젊음에 대한 향수와 욕망을 느끼는 것도 부정적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린 스타들에게 쏟는 애정이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몰입하는 건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한 대중문화평론가는 "이모팬들이 팬심을 건강하게 표출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며 "성인으로서 자신이 좋아서 하는 행동이 사회적으로도 바람직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조옥희 기자 hermes@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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