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을 맞아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재개하자는 우리 정부의 제안에 대해 북한이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정부는 6일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을 계기로 10일 판문점 북측 지역인 통일각에서 이산상봉을 위한 적십자 실무접촉 개최를 북측에 공식 제의했으나 8일까지도 북한은 수용 여부를 밝히지 않았다. 통일부 당국자는 "7일에 이어 판문점 남북 연락관 통화에서도 이산가족 상봉과 관련한 북측의 언급은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의 경우 북측은 우리측의 이산상봉 제의 이틀 만에 답신을 보냈다.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산술적으로 9일에라도 북측이 행사 개최에 동의하면 10일 실무접촉을 갖는데 지장이 없다"고 말했다.
향후 북측이 취할 행동 패턴은 크게 4가지다. 우리 측 제안을 원안대로 수용하거나 작년 가을처럼 다른 조건을 걸어 '패키지 딜'을 시도할 수 있다. 또 제안 자체를 거부하거나 침묵을 계속 이어 가는 경우도 예상된다.
일단 북측이 남측 요구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다. 이번 이산상봉이 지난해 무산된 행사를 재개하는 차원인 만큼 행사 날짜와 장소 외에는 실무적으로 협의할 사안이 그리 많지 않다. 북측이 맘만 먹으면 예정된 협상이 얼마든지 가능한데 굳이 시간을 끌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때문에 북한이 이산상봉을 대가로 남측에 요구할 반대 급부를 확정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북측은 지난번에도 돌연 금강산관광 재개 회담 카드를 들고 나왔다. 하지만 이산상봉을 마무리한 뒤 금강산관광 재개 회담을 하겠다는 정부의 원칙 앞에 논의는 평행선을 달렸고, 결국 상봉 무산의 빌미가 됐다.
북한의 고민은 금강산관광처럼 이산가족 상봉과 연계할 수 있는 인도주의 현안이 많지 않다는 데에 있다. 게다가 정부가 상봉행사 재개를 제안하면서도 이산상봉과 금강산관광의 분리 대응 입장을 수차례 공언한 점도 북측의 선택지를 좁히고 있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은 협상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라도 이른바 '끼워팔기용 역제의'를 할 수 있는 소재가 필요하다"며 "실무접촉 일정과 장소를 활용해 흥정을 이어 가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남 온건파로 알려진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처형 이후 입김이 세진 군부가 남북관계 전면에 나선다면 행사 자체를 보이콧할 가능성도 있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 당국이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촉구했지만, 현재 남북대화에 적극적으로 임할 내부 동력은 많이 약화한 상태"라며 "겉으로는 이산상봉 제의를 비난하기도 어려운 만큼 우리 정부가 도저히 수용하기 곤란한 정치적 사안을 내세워 사실상 대화를 거부하는 모양새를 취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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