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신상훈 전 신한금융지주 사장은 한동우 현 회장과 서울 시내 모처에서 만났다. 두 사람이 만난 것은 2010년 신한사태 이후 처음. 당연히 세간의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갈등 수습의 신호탄이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았다.
하지만 8일 만난 신 전 사장은 여전히 격앙돼 있었다. 그는 "신한은 금융회사로서 가장 중요시해야 할 신뢰를 저버리고 있다"며 "지금처럼 운영하다가는 머지 않아 고객에서 멀어지게 된다"고 날 선 비판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과격한 표현과 민감한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신한사태를 겪으며 벌어질 대로 벌어진 신 전 사장과 현 경영진 간의 골은 그만큼 깊어 보였다.
-3년만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동안 소회는.
"신한사태의 배경과 내막을 잘 살펴 나온 판결이라고 본다. 조작된 기획 고소였다는 게 재판 과정과 판결을 통해 드러났다. 다만 법원이 라응찬 전 회장의 지시로 이상득 전 한나라당 의원에게 건네졌다고 알려진 남산 3억원에 대해 관리 소홀을 물어 벌금형을 내린 부분에 대해선 다시 법리적 판단을 해볼 생각이다."
-당초 신한 측이 왜 고소를 했다고 보는가.
"나는 신한사태 당사자가 아닌 일방적인 피해자다. 외부에선 신한사태가 내부 경영권 다툼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고 있으나, 난 결코 라응찬 전 회장에게 반기를 들거나 그 자리를 넘본 적이 없다. 라 전 회장을 보좌해온 이들이 없는 혐의를 무리하게 만들어 일방적으로 고소한 것이다. 아무 죄도 없는 사람한테 죄를 지었다며 3년 동안 해명하라고 한 것이다."
-3일 한동우 회장과 화합 차원에서 만났는데.
"한 회장이 보자고 했다. 하지만 의미 있는 대화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대화의 여지가 없어 곧 자리를 떴다. 한 회장은 이번 재판결과를 바탕으로 신한사태 전말을 그룹 차원에서 진상조사를 한 후 국민과 이사회, 주주들에게 소상히 설명해야 한다."
-신한이 아직도 라 전 회장의 영향력 아래 있다고 보는가.
"신한은 죽은 조직이다. 라 전 회장이 경영에서 물러나 있다고 하지만 현재 경영진을 보면 모두 라 전 회장 사람들 뿐이다. 내 사람으로 분류되거나, 재판에서 내게 유리하게 증언한 사람들은 모두 배척됐다. 신한사태는 나로 끝나는 게 절대 아니다. 제2의 신상훈이 나올 수 있다."
-항소심 판결 이후 행보는.
"일단 항소심 판결로 검찰 기소 후 정지됐던 금융기관 임원 자격은 되찾았다. 나는 임기 중에 신한은행의 일방적 고소로 이사회 결의에 따라 업무가 2010년 9월 중지됐다. 물론 이후 후배들까지 검찰조사를 받으며 불려 다니게 돼 결국 내가 사표를 냈다. 신한은 이제 이사회에서 직무정지 내린 것을 원상복귀 해야 한다. 당시 내 임기는 2011년 3월까지로 6개월 가량 남아 있었다. 하루라도 복직해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고 정정당당하게 퇴임식을 거쳐 스스로 물러나겠다. 만일 사과와 명예회복이 없으면 부당고소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도 추가로 물을 것이고 이사회와 주주들의 설득작업도 내가 직접 할 것이다."
-그렇게 하면 또 갈등만 표출될 수 있을 텐데.
"금융회사의 생명은 신뢰다. 지금처럼 경영해선 신한의 미래는 없다. 신한은 신한사태와 관련된 자체 진상조사를 펼쳐 그릇된 부분을 바로잡고 대국민 사과를 하고 새로 태어나야 한다. 경영진 물갈이도 불가피하다. 나를 자리욕심이나 내는 노인이라고 폄하해도 괜찮다. 이를 바로잡아 신한이 제 갈 길을 가도록 한 후 가족과 함께 편히 쉬고 싶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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